사업계획 유감

한해살이 임원의 한계

by 랜덤초이

기업의 경우 해마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연례행사처럼 반드시 진행하는 업무가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 연말 조직개편 및 인사이동이란 것도 그렇지만 내년의 사업 환경을 예상하여 연간 사업계획 목표 수준을 확정하는 절차도 그런 연례행사 같은 이벤트이다.


각 사업부서의 사업계획 목표는 해당 연도가 마무리될 무렵 실적과 비교하여, 계획했던 목표 대비 달성률(%)을 따져서 사람과 조직에 대한 평가와 보상의 기준으로 작동한다.

때문에 각 사업부서의 목표 설정 과정은 치밀한 분석과 예측이 개입하여 적정한 수준을 제시하게 된다.


사업 실적은 목표 대비 달성 수준을 고려해서 성과를 평가하니까 달성 가능한 수준의 보수적인 목표를 제시하는 게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도전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그에 약간 못 미치는 결과를 얻은 부서와 통상적인 노력으로 가능한 정도의 목표를 세운 후 초과 달성하는 부서가 있다면 두 부서 중 어느 부서의 성과가 더 좋다고 평가할 것이냐의 판단은 분명히 달성률이란 숫자로만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목표를 제안하고 CEO와 이를 합의하는 과정은 매우 첨예한 눈치 작전이 벌어지기도 하고, 합의의 과정에서 딱히 근거는 없지만 의지를 가지고 목표가 변동되기도 한다. 그래서 옳은 일은 아니겠지만 약삭빠른 사람들의 경우 뭔가 실적 상승 요인을 감춰놓거나 하는 경우도 간혹 볼 수 있었다.


나는 이런 CEO와 사업부서의 목표 합의 과정을 지켜보다가 특정 사업부서장끼리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 적이 있었고 그때 들은 대화의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당시 회사의 사업조직은 네 개의 부문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중 세 개의 부문은 고객 유형에 따라 사업조직이 구분되어 있는 형태였고, 십여 년 이상 그런 구분으로 조직이 나눠진 체 기존에 확보한 고객 규모에 따른 기저 매출이 있었기에 해마다 매출 목표의 변화 폭은 작은 조직이었다.

나머지 하나의 부문은 고객 유형이 아닌 신규 기획된 상품을 기준으로 사업부문을 신설했고, 사업의 초기 단계라는 이유로 사업 목표를 예측하기 어려운 면이 있는 조직이었다.


전사 매출 목표의 대부분은 기저 매출을 가지고 있는 사업부문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CEO가 목표에 대해 챌린지 하는 대상은 주로 기존 사업부문장을 타겟으로 얘기되고 있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B2B 사업을 하는 부문의 경우, 일반 소비자 고객 대상의 사업보다는 영업력에 의한 매출 증대 기회가 크다는 기대를 받고 있어 CEO의 요구가 집중되고 있었다.


“G전무, 내년 매출 목표가 2조 8천억 원이던데 말이야, 3조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죄송합니다. 저희 부문의 매출 목표는 올해 대비 11% 상승한 목표로, 고객 단위 별로 분석해 정말 스트레치로 영업 목표를 잡은 겁니다. 더 이상 올려 잡기가 어렵습니다.”


CEO는 탐탁지 않은 듯 연신 G전무를 압박했지만 G전무 역시 부문의 사업환경을 설명해 변호하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아니 소심하긴 덩치도 큰 양반이 왜 그렇게 통이 작아?”


CEO는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차며 시선을 반대편에 앉은 다른 부문장에게 돌려 다른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그때 G전무의 옆에 앉아있던 신사업 부문의 A전무가 G전무에게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


“왜 그냥 3조 하고 그 다음해에 한 5조 매출하겠다고 그래”


G전무는 깜짝 놀라며 강하게 부정하여 말했다.


“아니 무슨 말이야? 절대 안 돼. 진짜 우리가 할 수 있는 목표 다 내놓은 거야 지금”


A 전무는 미소를 띠며 조용히 얘기했다.


“(풋) 그때까지 회사 다닐 거야?”


두 전무들의 대화는 반대편에 앉은 부문장들과 얘기하던 CEO의 대화가 마무리되면서, 더 이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짧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느낀 감정이 지금도 머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사업을 책임지는 부문장인 A 전무가 어떻게 저렇게 가볍게 얘기할 수 있을까?

어차피 약속한 시점까지는 본인이 그 일을 맡고 있지 않을 것이니, 그냥 의지로 공수표를 날리라는 얘기는 설마 농담이라고 하더라도 절대 해서는 안될 말 같았다.


① 무책임한 목표 제시 ② 실행 중 목표 미달 ③ 그에 대한 원인 분석 ④ Catch up 방안 제시 ⑤ 목표 미달하더라도 뭘 배웠다는 Lesson learned 사항 보고 ⑥ 그리고 다시 조정 목표 또는 달성 방안 제시


A 전무가 그동안 보고하는 대부분의 CEO 보고는 이런 식이었다. 중간중간 신규 상품에 대한 광고 콘텐츠 제작 보고를 섞어서 계속 역동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듯 보이게 어필하고 있었지만, 그가 맡은 사업은 여전히 방향을 잡지 못해 휘청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조직 장악력을 바탕으로 그의 업무방식을 고집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가끔 CEO가 그가 맡은 사업의 발전을 걱정하여 챌린지 할 때만 사뭇 심각한 인식을 공유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뒤에서 얘기하는 그의 인식은 그런 수준이었다.

내가 맡은 동안에만 문제없이 잘 넘기면 된다. 뒤에 무슨 일이 생기는 건 후임자의 책임이다 이런 생각


NIMBY(Not In My Back Yard) 보다 무서운 게 어쩌면 NIMI(Not In My Incumbency)인 것 같다.
장기적인 조직의 발전 지향과 방법을 고민하기보다 당장에 보여줄 수 있는 단기적 성취로 상황을 포장하는 데 익숙하다 보니 계속 바뀌는 표적만 쫓다가 길을 잃는 것이었다.


그 후로 채 3년 여가 지나지 않는 사이에 A 전무가 맡고 있던 조직은 정리되어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신사업이 원래 실패 위험이 큰 법이지라고, 그래도 잠시동안은 우리가 그 분야에서 시장을 선도해서 마케팅적 효과를 얻었다고 쉽게 얘기한다.


그러나, 진심으로 성공을 꿈꾸지 않는 리더와 함께 일하는 조직의 구성원들은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무엇을 배우게 될 것인지 암울할 뿐이다.

틀릴 수도 있지만 바빠 보이는 일을 하다보니 내가 속한 조직은 사라지고, 나를 이렇게 리드한 리더는 다른 어딘가에서 또 다른 목표를 팔아 일신의 영화를 꿈꾸고 있다면 ...


그래서 회사가 사업계획을 논의하는 과정은 한해살이 식의 합의 보다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한 목표를 찾아가는 형태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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