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청(守廳)과 숙청(肅淸)

by 랜덤초이


우리나라 사람 모두에게 익숙한 판소리 춘향가에서는

작중 최악의 빌런(villain)인 탐관오리 변학도가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고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는 춘향을 옥에 가둔다.


이 장면은 곧 이어지는 암행어사 출두 씬(scene)과 함께 작품의 서사가 위기에서 절정으로 치닫는 부분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으며, 그래서인지 ‘수청을 들라’는 표현만 들어도 누구나가 춘향전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수청'이란 표현은 요즘 일상에서는 쓰이지 않는 말이라서, 대부분 사람들은 춘향전 작중의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여 단어의 뜻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해보면 “수청(守廳)”이란 ‘높은 벼슬아치 밑에서 심부름을 하던 일’을 의미한다.

사전적 정의 만으로는 많은 이의 짐작(?)처럼 여주인공에게 성적인 몹쓸 의도를 내보이는 것이라고 직접 해석되지 않지만, 단어란 것이 쓰인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사전적 의미 이상의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법이니, 아마도 춘향전을 보며 많은 이가 느꼈을 상황 분석이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지금의 현실 사회 속 조직 내부에서 일어난다면, 아무리 사전적 의미가 어쩌고 저쩌고 하더라도 그런 요구를 들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느꼈을 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옳으니 말이다.


아무튼 '수청'의 사전적 의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권력자가 시키는 일을 행하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수청'이란 단어에 ‘ㄱ’ 하나만 더해 넣으면 “숙청”이 된다.

억지스러운 전개 같지만 발음이 비슷한 두 단어가 모두 권력자와의 관계와 연관된 단어란 점은 재미있는 우연이라고 생각된다.


“숙청(肅淸)”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 단체나 비밀 결사의 내부 또는 독재 국가 등에서 정책이나 조직의 일체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반대파를 처단하거나 제거함’ 이란 뜻이다.

처단이나 제거한다라는 표현 때문에 목숨을 빼앗는 경우만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꼭 그 대상을 죽이지 않고도 그가 가진 지위, 권력, 명예 등을 빼앗아서 조직에 대한 영향을 줄 수 없게 만드는 행동도 숙청이라고 이야기한다.


권력자가 조직이나 집단의 내부에서 숙청을 실행하는 이유는 비교적 명백히 이해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는 권력자 자신의 의지와 목적에 반하는 대상을 제거해서 스스로의 권력에 대한 위협을 없애고, 나아가 숙청을 지켜본 사람들에게도 공포와 위협을 느끼게 함으로써 권력자의 의지에 반하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존재한다.


역사 속에 남아 전해지는 끔찍한 숙청의 사례가 많지만, 실행의 수단과 정도만 다를 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숙청은 어렵지 않게 목격되고는 한다.


소위 '블랙리스트 사건'을 통해,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기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상대 진영의 사람들을 자리에서 쫓아내는 일을 되풀이하는 걸 흔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같은 진영 안에서 함께 일하던 정치인도 소속 정당의 입장과 다른 개인의 소신에 따라 주장을 펼쳤다는 이유로 권력자의 눈밖에 나서 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거나 하는 일도 반복되곤 한다.


다양성을 가진 각자의 개인이 최선을 다해 스스로의 옳음을 각축하는 사회가 용납될 수 없는 거라면
도대체 우리 사회는 얼마나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된다는 말인가.


권력자의 의도대로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과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개인이 집단으로부터 린치를 당하는 사회라는 건 얼마나 잔혹한가.


‘수청’을 들지 않으면, ‘숙청’을 당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을 갖고 살아가야 하나.


우리가 춘향이도 아닌 다음에야 한양 간 이도령이 "암행어사 출두야!!!" 하고 나타나서 우릴 구해줄 리도 없을 터인데 아무런 기댈 곳 없는 평범한 우리네는 ‘수청’과 ‘숙청’ 사이에서 눈치 보느라 머리 숙이고 허리 굽은 “ㄱ”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 건가 답답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수청'을 강요 당하지 않고, '숙청' 당하는 걸 걱정하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사실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용납되는 그런 당연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다시 한번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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