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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Dec 09. 2022

언론삼사를 생각하며

‘언론삼사’란 얘길 들으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떠올릴까?


혹자(或者)는 지상파 방송사인 KBS, MBC, SBS 3개 방송사를 떠올릴 것이고, 신문 매체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조중동’으로 묶여서 얘기되는 조선(朝鮮), 중앙(中央), 동아(東亞)의 3개 신문사들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건 ‘언론삼사’를 ‘言論 3社’라고 받아들이기 십상인 탓이다.
우리나라의 언론 매체 중 셋(3)으로 묶이는 대표적인 회사들을 찾다 보니, 보도 기능을 가진 지상파 방송사나 대형 신문사를 떠올리는 건 당연한 의식의 흐름일 수 있다.


하지만 고유명사로서의 ‘언론삼사’는 ‘言論三司’를 일컫는 것으로 조선시대 '언론(言論)' 기능을 담당한 사헌부 · 사간원 · 홍문관을 합하여 부르는 말이다.

조선의 3개 언론 담당 기관은 언론이란 말을 붙이지 않고 ‘삼사(三司)’라고도 통용되기도 한다.


당시의 언론이란 표현은 현대의 언론과 100% 같은 것이라고 보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각 기관의 역할을 살펴보면 왕권이나 신권의 전제(專制)를 막기 위한 기능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사명으로 하는 현대의 언론과 그 존립 목적이 상당히 유사했구나 싶다.

※ 전제(專制) : 국가의 권력을 개인이 장악하고 그 개인의 의사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 (네이버 국어사전)


‘사헌부’는 백관에 대한 감찰·탄핵 및 정치에 대한 언론을, ‘사간원’은 국왕에 대한 간쟁(諫諍)과 정치 일반에 대한 언론을 담당하는 언관(言官)으로서 역할을 했으며, ‘홍문관’은 ‘세조’ 대에 없어진 집현전을 대신하여 궁중의 서적과 문한(文翰)을 관장하고 왕의 학문적·정치적 고문을 하는 학술적 직무를 담당했다고 알려진다.


조선의 삼사(三司)는 임금의 권력 행사를 보조하면서도 통치행위에 대해서도 비판하며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꾸준히 실천했다는 점에서 현재의 언론이 가지는 역할과 많은 유사성을 보여주었다.




재밌는 것은 회사라는 조직 안에도 ‘삼사’라는 표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소위 끗발이 있는 부서라고 얘기되는 부서로서의 '삼사'가 그것인데 바로 인사(人事), 심사(審査), 감사(監事) 부서를 일컫는 말이다.


해당 기능을 수행하는 부서의 역할이 모든 회사에서 정확히 동일하게 운영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적으로 인사(人事) 부서는 채용, 인력관리, 인사제도 기획/운영, 인사평가, 조직과 보직 임면에 대한 업무를 수행한다.

심사(審査) 부서는 통상 '경영기획'이란 이름이 붙기도 하는데 예산 계획의 수립과 집행 과정에 대한 합의 검토 등 업무를 수행한다.

감사(監事) 부서는 정부기관인 감사원처럼 회사 내에서 각 조직이 수행한 업무처리의 적정성을 확인하고 fraud와 같은 부정행위를 확인해 후속 조치를 수행한다.


소위 회사의 삼사가 끗발이 쎈 부서로 인식되는 이유는 위에 서술한 해당 부서의 기능들이 대부문 CEO의 스탭으로 집중되어 있고, 그들의 업무가 다른 부서들에 대한 통제 및 권한을 행사하는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의 삼사는 곧 CEO의 의사결정을 조직에 실현하고 강제하는 친위부대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다 보니 회사의 삼사는 권력의 비판과 견제라는 언론의 기능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권력의 행사(行使)를 조력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조선의 삼사(三司)와 사뭇 그 성격이 다르게 느껴지곤 한다.


아마도 글을 읽다 보면 원래 다른 기능을 수행하던 조직들을 이름이 비슷하다는 억지 연결고리로 비교해서 차이를 강조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마 제대로 된 문해력을 가진 사람들의 반응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회사의 삼사를 조선시대 언론삼사와 연관 지어 얘기해보고 싶은 건 일반적인 회사에서도 권력의 전제(專制)가 가져오는 리스크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조선의 임금이라고 자신의 통치 행위에 토를 달고 비판을 제기하는 신하들의 모습이 마냥 달가울 수는 없었을 것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조정 안에 레드팀을 운영하듯 '언론'의 역할을 두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런 역할이 존재하는 게 결과적으로 나라에 도움이 되더라는 역사 속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이유일 것이다.

※ 레드팀 : 조직 내 전략의 취약점을 발견해 공격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팀, 또는 이러한 팀을 설치하는 의사결정 기법  (네이버 사전)


어쩌면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감시와 권력의 교체가 이뤄지는 국가 조직에 비해, 회사라는 민간 조직의 경우 오히려 권력의 전제가 발현되기 더욱 쉬운 환경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회사 조직이 더욱 영속적인 생존과 성장을 도모하려면 회사의 삼사도 조선시대의 삼사처럼  전제적 리더십의 폐해를 견제하는 '언론'의 역할을 일정 부분 수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조선 성종(成宗) 시대 홍문관의 성세명(成世明)이란 관리는 "신하의 도(道)는 의(義)를 따르는 것이지 임금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라고까지 진언한 적 있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임금의 지시가 불의(不義) 한 일이라고 얘기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말임에도 당시 임금인 성종은 그에게 불이익을 내리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몸 담고 있는 현대의 각종 조직 안에서도 특정한 사안에 대한 다른 의견과 주장들이 묵살되고 배척되기보다는 다양성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공감이 가능하면 좋겠다.  

다양성이 사라진 집단이 생존에 취약해진다는 점은 인류사뿐 아니라 지구사에서도 이미 충분히 증명되어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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