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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Jan 04. 2023

꿈과 계획

새해가 시작되면서 피트니스 센터는 붐비고 흡연공간은 한산해진 것처럼 보인다.

신년을 맞아 새로운 기분으로 뭔가를 다짐하며 실천하려는 사람들의 시도가 엿보이는 현장이다.


동료들과 우스갯소리로 '작심삼일이 지나는 목요일 이후가 되면 다시 평소와 같은 상태로 돌아가겠지'라는 얘기를 나누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가 굳건한 사람들이라면 삼일보다는 훨씬 더 오래 각자의 계획을 이뤄가겠지라고 생각해 보았다.

 

나도 어릴 적에는 종종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곤 했다.
지금까지도 가끔은 시도하는 신년 계획 말고도 방학이 되면 생활 계획을 짰고, 새 학기가 되면 학습진도 계획을 짰다.  직장생활을 시작해서도 영어나 일본어 같은 외국어 공부에 대한 계획을 짜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나는 그다지 계획을 잘 지키는 사람은 아니었던 듯하다.

내가 세운 계획을 애초의 의도대로 마무리한 기억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영화 기생충에는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란 말이 나온다.

주인공이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 계획을 하면 모든 계획이 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거든..." 이란 근거에서였다.


계획이 틀어지는 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이유일까 아니면 계획대로 '하지 않는 게' 이유일까?

생각해 보면 계획이 달성되지 않는 원인을 밖에서 찾으면 '안 되는 게'가 맞을 것이고 나에게서 찾으면 '안 하는 게'가 맞는 표현이지 싶다.

사실 애초에 계획이란 건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계획이 실패하는 건 '계획대로 안 하는 게' 이유라고 보는 편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의 의지가 관여할 수 없는 일을 계획한다면 그건 '계획한다'라는 표현보다는 '꿈을 꾼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테고 말이다.


2022년 초 처음으로 브런치에 글을 써서 발행할 수 있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공감될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과 문제의식에서 글을 쓰되 타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마음속으로는 잘 정리된 생각이었는데 글로 내어 놓을 때면 나 스스로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고, 또 때로는 과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보이면서 내가 쓴 글에 대해 아쉬움이 커지곤 했다.


마음과 다른 결과물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울 때, 식구들은 일단 쓰고 싶은 만큼 다 써보지 그러냐고 얘기해 주었다.


미술을 하는 아내는 “내가 글은 잘 모르지만 미술 작가는 수많은 그림을 그려서 그중에 몇 개의 맘에 드는 작품을 만나는 거야"라고 얘기했다.

"그러면 도대체 어느 정도나 글을 써보면 맘에 드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나에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우선 1년에 100개는 써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얘기해서 100개의 글을 발행해보자는 계획을 갖게 해 주었다.


평소 회사에서 일을 할 때면 그래도 남들보다 많은 보고서를 비교적 쉽게 써본 경험이 있던 터라, 100개의 글을 쓰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특히나 글로 써서라도 남기지 않으면 마음속에 응어리질 것만 같던 희한한 경험을 많이도 겪었던 터라 '100개의 글'이라는 계획은 "그래 뭐 그 정도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글을 쓰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고, 흘러넘치던 글쓰기의 열정은 차분히 잦아들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작가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글은 책으로 탄생하기도 합니다...."라는 브런치팀의 독려와 독촉글도 자주 보게 되었다.


나에게 필요해서 내가 좋자고 글을 쓰는 것인데, 왜 이렇게 글쓰기가 힘들까 싶기도 했고, 애써서 써놓았던 글들을 다시 보며 퇴고하려면 답답함에 치워놓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여전히 내 경험과 내 생각을 글로 쓰고 싶고, 반면 점점 더 글쓰기가 쉽지 않다는 걸 절감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글이 딱 100번째의 발행글이 되는 순간이 되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지만 계획이라도 있으니까 끈기 있게 뭔가를 지속할 수 있는 계기도 되는구나 느끼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을 일이겠지만 스스로는 꾸준히 뭔가 지속하여 계획을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자신이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기도 하다.


이제 다음 스텝으로 새로운 계획을 가져보자면, 한건 한건의 이벤트와 짧은 단상들을 넘어서 뭔가 연대기적인 느낌을 가진 장편의 책을 한 권 내보자고 생각해 보았다.


또 이루지 못할 일이 되더라도, 아직 나는 무계획보다는 계획이 필요하다는 걸 믿고 실천해보고 싶은 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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