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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Jan 13. 2023

실수의 추억

특정한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렸을 때,

정확한 단어가 기억나지 않고 발음의 뉘앙스만 부분적으로 머릿속을 맴도는 경우...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이 경험해 봤을 상황이지 싶다.

정확한 단어가 아닌데도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전혀 다른 단어를 마치 동일한 단어처럼 인식하는 경우 말이다.


TV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했던 배우 서현철 씨는 '레전드 에피소드'를 많이 남겼는데, 대부분 그분의 아내와 관련된 얘기였다.

서현철 배우의 아내인 정재은 배우는 단어 중 어느 음절 하나만 비슷해도 혼용하는 경우가 있다는데, 예를 들어 ‘수저통’을 ‘필통’으로 ‘다이어트’를 ‘아르바이트’로 ‘비데’를 ‘내비’로 ‘리콜’을 ‘리필’로 말한 경우들이었다.

워낙 서현철 배우의 입담이 좋고 능청스러운 표정 연기가 더해지다 보니 그런 단어의 오사용 사연 하나하나가 모두 큰 웃음을 주었다.


내 주변에도 이렇게 비슷한 발음의 단어를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잦은 친구가 있다.

나는 '짤보'란 별명의 그 친구와 함께 야구 동호회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 연습을 하다가 장비를 구매해 팀을 구성할 무렵, 유니폼 디자인을 고르기 위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야 줄무늬 있는 유니폼이 얼마나 멋있는데... 뉴욕 양키즈 홈 유니폼처럼 스프라이트가 있는 걸로 하자"

듣다 보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귀에 걸려서 다시 되뇌어봤고, 줄무늬란 뜻의 '스트라이프(stripe)'를 '스프라이트(sprite)'라고 말한 것을 알게 되었다.


또 한 번은 '짤보'와 함께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오랜만에 귀국한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친구에게 짤보가 물었다.

"네가 일본에서 몇 년 있었지?"

"박사학위 할 때부터 하면 10년도 훨씬 넘었지."

"이야 ~ 그러면 너 이제 일본어는 완전히 네거티브겠다."

'토박이 현지인'을 얘기하는 '네이티브(native)'를 '부정적인'이란 뜻을 가진 '네거티브(negative)'라고 말한 것이었다.

오래 살았으니 부정적이 된 거냐고 물은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나 역시도 어릴 때는 비행기 승무원을 '스튜디어스'라고 하는지, 혹은 '스튜어디스'라고 하는지 엄청 헷갈렸었으니 발음 때문에 단어를 헷갈리는 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경험인 듯하다.


그런데 내가 살아오며 비슷한 발음 때문에 단어를 헷갈려서 가장 난감했던 건 중학교 2학년 때 미술 필기시험을 볼 때 있었던 일이다.


19. 다음 괄호 안에 들어갈 단어를 각각 순서대로 적으시오 (주관식)

       칸딘스키 - [  ㄱ  ] 추상, [  ㄴ  ] - 차가운 추상          (          ,           )


현대 추상회화의 선구자 칸딘스키가 자유롭고 다이내믹한 뜨거운 추상을 대표하는 작가란 건 분명히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가운 추상을 대표하는 작가의 이름이 시험을 치르던 순간 도대체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무슨 … ~리안, ~이안, ~비안 뭐 그렇게 끝나는 발음이었던 것 같은데 …'

한 번에 생각해내지 못했던 이름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생각나지 않았고, 그 상태로 시험종료 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 때문인지 더욱 작가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단어가 있어 답안지에 적어놓고 나왔던 나는, 나중에 내가 적어놓은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게 되고는 부끄러워 한동안 미술 시간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내가 적어놓은 답은 (뜨거운. 레즈비안)이었다.


변명하자면 그 시절 새로운 질병으로 막 알려지고 있던 AIDS에 대해 신문기사와 TV 다큐멘터리가 범람하면서, 동성애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식의 정보가 무분별하게 전파되고 있었다.


중학생이 뜻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여기저기 신문과 방송에서 주워들은 단어가 많다보니 '레즈비안'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다가 '몬드리안'이라는 작가의 이름과 혼동되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당시에 헷갈렸던 단어들의 뜻을 정확히 구분하여 적재적소에 맞춰 사용할 수 있지만, 미술관에 갔다가 갑자기 몬드리안의 작품을 보게 되면 수십 년 전의 실수가 자동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살다보니 실수의 순간 느꼈던 부끄러움은 시간이 가고 옅어지지만 실수를 경험하며 남은 기억은 뚜렷이 남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더 많은 시도를 하면서 과감하게 도전하며 살았더라면 지금 더 많은 추억과 배움이 남아있지 않을까도 생각된다.

배울게 있는 실수라면 어서어서 서두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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