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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Feb 14. 2023

불면의 밤

언제부터인지 자다가 새벽에 잠을 깨는 일이 잦아졌다.

피곤함에 무거워진 눈을 감고 곯아떨어졌다가도 갑작스레 정신이 들면서 완전히 깨어있는 상태의 기분이 들곤 한다. 


시간을 확인하면 대개는 새벽 세 시 전후였고, 다시 잠들려 애써보지만 한번 활성화된 머릿속은 예정된 루틴처럼 특정 시기의 기억을 더듬는 경우가 많았다.

살면서 이해 못 할 상황을 겪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냐 만은 망각이라는 치료제도 듣지 않는 지겨운 기억은 신체활동까지도 제어하는구나 싶다.


잠도 편하게 못 잘 정도의 억울한 마음과 불안이 몸에 좋을 리는 당연히 없다.

어떻게든 숙면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내가 가진 기억들은 글로 남겨놓고 내 머릿속은 비워내려 애써보았지만 그럴수록 기억은 또렷해지고 불면의 밤은 사라지지 않는 걸 경험했다.


혼자 삭이기도 어렵고 누군가에게 모두 털어놓아서 시원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얘기할 때도 있었지만, 내가 겪은 상황과 기억을 공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잊으라는 얘기뿐이었다.

정면으로 부딪혀 기억 속의 사람들과 당시의 일에 대해 정리하려 해 보았지만 아무도 지나간 일에 책임감을 갖고 대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다시 불면의 정도가 심해지게 되었다.


병원에 가고 약이라도 써야 할까 생각해 볼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 방법이었다.

유튜브에서 검색해 알게 된 숙면을 도와주는 ASMR 사운드가 그것이었다.


그 원리가 얼마나 과학적인 것인지에 대해선 굳이 찾아보지 않았지만, 나는 경험 상 자기 전에 빗소리가 녹음된 ASMR 동영상을 틀어 놓으면 자다가 잠을 깨는 일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론 참을 수 없던 불편한 기억을 가지고도 이렇게 간단히 불면의 증상이 해소될 수도 있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 덕에라도 체력이나 마음의 손상을 덜 수 있다니 다행스러움과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도 된다.


그러다 문득 내가 자주 듣고 있는 빗소리 ASMR 동영상들의 조회수 정보에 눈이 갔다.

각각의 동영상은 적게는 수만에서 수십만이 보통이고 어떤 동영상의 경우 수천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지금도 계속 새로운 동영상이 생겨나고 있는데도 저 수많은 수면유도 동영상이 이렇게나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는 건 도대체 뭘 의미할까 생각해 보았다.


“나처럼 불면의 밤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저 사람들은 또 각자가 얼마나 힘든 일이 있어서 잠을 청하지 못하는 걸까?”


“잠들지 못하는 누군가의 사연이 다른 누구에겐 이미 까맣게 잊어버린 일이지는 않을까?”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잔다는 건 얼마나 복 받은 일일까?.” 


“양심의 가책 … Pang of conscience …라는 게 있다는데, 과연 남에게 가혹했던 사람들은 잘 자고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접고, 다시 잠이 들기 위해 즐겨찾기 해놓았던 빗소리 ASMR 을 찾는다.

오늘 밤은 잠이 들어 중간에 깨는 일 없이 좋은 꿈을 꿔보고 싶다.

예전에 그럴 수 있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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