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폭력이란 없다.

나를 만든 사건들

by 랜덤초이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상호작용 하면서 저마다의 자아와 성격이 형성되어진다고 한다.

‘유복한 환경에서 인자하신 부모님으로부터 … ' 로 시작하는 전형적인 자기소개가 익숙하듯 사회는 어떤 사람의 성장 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그 사람을 판단하려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 “당신의 성격이 형성되는데 가장 크게 영향을 준 일이 뭐였냐” 고 물어보는 질문을 받게 되면 어느 특정 기간의 기억이나 오랜 기간 형성된 관계 말고, 아주 짧은 하나의 사건이 내 성향을 너무 크게 바꾼 것이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다.


때는 중학교 입학식

신입생 전체가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의 환영과 훈화말씀을 들은 후, 자세한 안내사항은 배정된 각반으로 이동하여 담임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라는 얘기가 방송되었다.


누구보다 빨리 배정된 반을 찾아가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보고 싶었던 나는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방송을 듣자마자 운동장에서 교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들이 제법 많다 보니 호승심이 생긴 것인지 아이들은 더욱 속도를 내어 달리기 시작했고, 저마다 교실까지의 최단거리를 머릿속에 그리며 각자의 루트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학교 현관에 다다르기 위해 화단을 가로질러야겠다고 생각하고 화단 안에 위치한 시멘트 멘홀을 밟고 건너뛰면 화단의 꽃을 밟지 않고 전체 화단 폭을 넘어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거의 날라가다시피 맨홀뚜껑을 밟고 현관 앞에 이르렀을 때, 누군가 나를 불러 세우는 소리가 들렸다.


“야 거기 이리와”

큰 목소리로 나를 불러 세운 분은 나중에 알았지만 2학년을 담당하는 체육선생님이셨다.


“네” 하고 선생님 앞에 걸어간 나는 이러다가 일등으로 교실에 가지 못하겠단 생각에 마음 졸이며 선생님을 쳐다봤고, 선생님은 짧게 물어보셨다.


“너 왜 화단에 들어가?”

아 내가 화단의 꽃들을 밟았다고 생각하셔서 부르신 거구나라고 생각한 나는, 사실 화단에 뛰어들며 이미 꽃들을 밟지 않도록 마음 속으로 계산해서 맨홀을 밟았던 터라 그 사실을 말씀드렸다.


“아뇨 전 맨홀 …” … “짝!!!”


미처 내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선생님의 손이 벼락같이 내 뺨에 날라왔고, 태어나서 처음 누군가에게 따귀를 맞은 경험은 그 다음 나를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상태로 만들었다. 그 뒤에 뭐라고 또 욕을 하셨는데 기억도 안나니 말이다.


많은 친구들 앞에서 갑자기 따귀를 맞았다는 그 사실 하나로 나는 인생에서 처음 느끼는 미묘한 감정에 빠지게되었다.

“아아 … 중학교는 이런 곳인가 보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어린이가 아니구나”


초등학생 때는 선생님의 질문에 누구보다 먼저 답을 하기 위해 ‘저요 저요’를 외치며 경합했고, 맘씨 좋은 교장선생님께 찾아가 간식도 얻어먹을 정도로 넉살이 좋았던 나는 바로 그날 그 짧은 몇 초의 경험으로 내 스스로를 동굴로 가두었다.

창피한 생각에 부모님께 말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혹시나 그 장면을 본 같은 반의 친구들이 있을까 봐 마음이 위축되기도 했다. 특히 선생님들과 말을 섞는 것은 더욱 조심하게 되었다.


수십년이 지나도 기억에 생생한 그 짧은 경험이 준 상처는 지금 많이 무뎌져 있긴 하지만, 아직도 만약 그때 그런 일이 없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상상해보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나보다 훨씬 험한 경험을 더 어린 나이에 겪기도 할꺼고, 어떤 이들은 군대에 가서 그런 충격적인 장면을 보기도 할 테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처음 폭력을 경험하는 순간은 그게 언제이든 어떻게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어느 세대를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에 따라 나의 경험이 사소하게 보일 수도 안타깝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 경험을 이렇게 글로 옮기고 남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의미가 있든 없든 어떤 작은 폭력도 누군가에게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공유하고 싶어서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폭력적 방법이란 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걸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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