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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Sep 01. 2023

올드미디어의 치킨게임

"홈쇼핑-유료방송사 송출수수료 정면충돌"

"'막대한 송출수수료 부담' 홈쇼핑들, 줄줄이 유료방송 사업자와 '결별'"

"TV 홈쇼핑 '블랙아웃'… 송출 수수료 갈등"


얼마 전부터 홈쇼핑 송출수수료 분쟁에 대한 뉴스가 자주 보인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는 갈등이지만 올해의 경우에는 진짜 송출 중단이 이뤄져 블랙아웃이 현실화될 수도 있어 보인다.


송출수수료는 홈쇼핑 회사가 방송 채널을 이용해 자신들이 소싱한 상품을 판매하는 대가로 유료방송사에 지급하는 '방송채널 이용수수료' 개념의 비용이다.


보통 홈쇼핑 회사들은 자신들의 채널이 시청률 높은 지상파 채널 사이에 위치하길 원하고, 그래야 채널을 돌리다가 그들의 채널이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져서 매출을 올리기 용이해진다.

(ex. KBS와 MBC 사이의 10번 채널 등)


서로 좋은 채널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홈쇼핑사들의 경쟁을 거치면서
유료방송사의 채널 편성권은 송출수수료라는 견고한 수익모델로 만들어져 왔다.


이런 모습이 마치 목 좋은 가게를 임차하는 경우와 비슷해서, 송출수수료는 건물주에게 내는 임대료와 유사하게 이해될 수 있다.  

즉 상점을 임차해 장사하는 건 홈쇼핑사 그리고 상가를 임대해 주는 건물주는 유료방송사라고 보면 되겠다.


이렇게 비유해 보면 지금의 상황이 아주 분명하게 이해된다.

상점 주인은 건물에 내방객이 줄고 있어서 장사가 잘 안 되는데도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려달라고 하니까 힘들다는 것이고,  건물주는 상점 주인이 진짜 장사가 잘 안 되고 있는지를 못 믿겠다고 버티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당연히 어느 선에서는 타협이 이뤄져야 하기 마련이다. 

블랙아웃이 현실화되었을 때의 손해가 양측 모두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은 건물주(유료방송사)의 협상력이 좀 더 높았던 게 사실이다. 


과거에는 주요한 홈쇼핑사의 경우 유료방송사와 함께 하나의 기업집단에 수직계열화되어 있었다.

어차피 상점의 주인과 건물의 주인이 가족 관계이다 보니, 상점 주인도 결국은 물건을 공급하는 판매자들로부터 수수료를 더 받아내는 방식으로 적당히 타협해야 할 유인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매출의 성장이 정체되고 대부분의 홈쇼핑사가 수직계열화된 관계를 끊어낸 지금은 협상의 결과를 예측하기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IPTV 회사에 지급해야 하는 송출수수료가 증가하면서 시청자수가 감소하는 케이블 TV에는 수수료를 줄이고 싶어 할 유인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제는 상점주(홈쇼핑사)들도 절박하게 차라리 상점을 빼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 건물주(케이블 TV)도 순순히 협상에 응할 만큼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2022년 기준, 케이블 TV 방송사들의 홈쇼핑 송출수수료 매출(7,558억 원)은 전체 방송사업 매출(1조 8,037억 원) 대비 41.9%에 이른다.

이는 전체 케이블 TV 방송사 영업이익인 1,309억 원의 5.8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2022 회계연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요약 중)


이런 상황이다 보니 만약 송출수수료가 10% 인하된다고 가정하면 케이블 TV 회사들의 영업이익은 절반 이상이 감소하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송출 수수료가 인하된다고 해도 같이 줄어드는 비용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내게는 지금의 상황이 마치 '지류(紙類) 신문'의 쇠퇴기를 보는 듯한 데자뷔로 보인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과거 집으로 지류 신문을 배달시켜 보던 당시에 신문사들은 구독료를 거의 받지 않았다.  

1년 무료, 2년 무료 식의 구독자 모집이 일반적이고 심지어 상품권이나 사은품을 더 주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사가 이익을 내던 방법은 광고에 있었다.

발행 부수가 많을수록 신문사는 지면 광고 수익을 더 많이 얻을 수 있고, 신문에 끼워져 배달되는 삽지 광고도 있었기에 사업을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인터넷 매체의 증가로 신문을 직접 구독하는 가구가 줄어들었고, 광고 수익이 따라 줄면서 다시 구독자에 대한 마케팅이 위축되고 그게 다시 구독자 감소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이어진 것이다. 


케이블 TV 역시 IPTV의 등장으로 가입자는 감소하고, OTT의 인기로 시청점유율이 줄어들고 있다.

송출수수료의 감소는 어찌 보면 속도의 문제이지 방향은 정해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 모습을 보니 케이블 TV 역시 과거의 지류 신문과 같은 올드 미디어화가 가속화 되는 것 같다.




지난 수십 년 간의 기술 발전은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었다.

특히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사회 변화의 단초가 되었다.

그 결과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바뀌고 또 그만큼 많이 생겨났다.

비디오 대여점, 만화가게, 워크맨, CD플레이어, 삐삐(pager), 디지털카메라, PDA 등등...


또 하나의 익숙한 올드미디어들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벼랑 끝 협상에 내몰리는 모습은 마치 절벽을 향해 달리는 치킨 게임을 보는 것 같아 애처롭기도 하다.


담력을 겨루는 치킨 게임에선 핸들을 꺾는 사람이 겁쟁이라 비난받지만 

사업의 영역에서는 새로운 길을 찾아 핸들을 꺾는 게 바람직한 태도일 수밖에 없다.


누가 더 환경에 맞춰 핸들을 꺾어가며 길을 찾고 만들어 갈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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