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랜덤초이 Aug 27. 2023

처서 매직(處暑+magic)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올해의 무더위도 어느새 그 기세가 한풀 꺾인 느낌이다.

원래 있던 말인지 신조어인지 모르겠지만

처서매직(處暑+magic)이란 합성어를 접하고는 

계절이 지나가는 순리가 정말 마법처럼 신비롭게 느껴진다.

24 절기가 처음 만들어질 때에는 

그전까지 얼마나 오랜 경험칙이 쌓여서야 이런 지혜를 얻었을지 참 신기하기도 하다. 


올해의 경우 숨 막히는 듯한 무더위 속에 에어컨이 고장 나고

수리 신청을 하고도 몇 주는 대기해야 했던 시간을 겪다 보니

아침저녁으로 서늘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처서매직의 신비로움이 더욱 놀랍고 고맙게 느껴졌다.



대개 엄혹한 고난의 시기를 비유할 때는 

무더운 여름보다는 추운 겨울을

빛으로 환한 낮보다는 어두운 밤을 그 예로 들고는 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표현은 일제치하의 계절을 겨울로 비유했고,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표현은 독재정권의 통치를 밤으로 비유했다.


당시의 사람들이 목이 빠져라 손꼽아 기다리던 것은 

늘 봄의 따뜻함이고 새벽의 여명이었는데

그렇게 간절히 바라는 빛과 따뜻함이 절정에 이르는 여름의 한낮도 

오히려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아무튼 계절의 변화에 규칙이 있다는 점은 정말 다행이다.

당장 어렵고 힘들어도 참고 버티면 지금보다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테지만)


날이 지고 어두워진 다음 새벽을 기다리려면 열 시간 안팎이 걸리고

겨울이 오고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서너 달 정도를 참고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시인의 바람처럼 빼앗긴 들에 봄(대한독립)이 오기까지는 36년이 걸렸고

닭의 모가지가 꺾여도 반드시 찾아 오리라던 새벽(대통령 직선제)은 26년의 시간이 걸렸다.  

하긴 지금의 어려움이 반드시 나아질 것이란 희망을 주려면 

저 멀리 있어서 보이지도 않는 예시로 희망을 제시하는 것보단 

가깝고 상상하기 쉬운 일로 희망을 제시하는 게 맞다.


등산을 가면 

숨이 턱 끝에 차고 더 이상 걷기 힘들 때 하산 중인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정상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해요?"

그러면 백이면 백 하산하는 사람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다 왔어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다시 걷게 되면 앞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대답한 사람들을 욕하게 되지만 

그렇게 속으면서도 결국 정상에 다다르면 

앞서 희망을 준 사람들이 다시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전달된 작은 희망이 지금의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진통제 같은 것이 된 것이다.

 



자연의 순환처럼 인생 역시 사이클이 존재한다고들 한다.

한때 유행했던 인생곡선을 보더라도 사람의 삶이 늘 좋거나 늘 안 좋은 직선의 삶은 없다.

좋은 때가 있으면 안 좋은 때가 있게 마련이고 

안 좋은 때를 겪다 보면 좋은 시절이 찾아오기도 하는 법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얘기도 수많은 경험칙을 통해 인정받은 법칙 같은 것 같다.

그리고 늘 답답하게 지연되는 것 같은 '인과응보(因果應報)'와 '사필귀정(事必歸正)'도 당연히 마법처럼 제 자리를 찾아갈 것이라 확신한다.


다만 원하건대  

"76년을 기다리면 핼리(Halley) 혜성이 돌아온다"라는 것보다는

계절이 가듯 날이 밝듯 그런 정도의 시간으로 희망을 지키며 기다릴 수 있는 시간 안에 

마법이 이뤄지길 바란다.


<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

작가의 이전글 나의 혼밥 적응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