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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Aug 21. 2023

나의 혼밥 적응기

2010년대 이전 나는 식당에서 혼밥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함께 밥 먹을 사람이 없으면 차라리 굶거나 포장을 해서 자리에서 먹지 

식당에 가서 혼자 앉아 밥을 먹는 건 꽤나 불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시엔 특별히 나뿐 아니라도 주변에서 혼자 밥 먹기가 어색하다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일본에선 혼밥이 유행이라며 우리나라에도 혼자 밥 먹는 사람이 남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게 벽을 보고 밥 먹는 자리가 생겨나고 있었지만

그건 그냥 먼 나라의 얘기일 뿐 우리나라에선 함께 떠들며 밥을 먹는 게 당연한 거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혼밥 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되었다.

TV 방송 속에서 그리고 일상 속에서도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되니, 나도 식당에서 혼밥 하는 사람을 봐도 특별히 신경 쓰이지 않게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혼밥을 실천하게 된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서너 해 전부터는 회사가 집에서 꽤나 멀어지게 되면서 저녁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졌다.

마침 건강을 챙겨야 할 일이 생기다 보니 식사 때를 맞추는 게 중요했는데

집에 가서 저녁을 먹으려면 너무 늦은 시간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밥때를 놓쳐 야식을 먹게 되면 폭식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고 매일 저녁 약속을 만들어서 때맞춰 저녁을 먹을 수도 없으니 혼밥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게 된 것이다.


처음 혼밥을 할 때는 여러 가지로 어색한 일이 많았다.

혼자서 4인용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는 것도 어색하고, 괜히 다른 누군가와 눈이 마주쳐지는 어색한 상황도 피해야 했다. 


그런 조건을 찾다 보면 패스트푸드 점을 찾는 경우가 많았지만 건강을 챙기려고 굳이 혼밥을 하면서 패스트푸드점을 자주 가는 건 이율배반적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혼자 가서 건강하게 한 끼 먹고 나올 수 있는 여러 식당을 찾아 경험하다 보니 의외로 내게 맞는 음식을 찾게 된 것이 순댓국이었다.


다른 음식보다 순댓국이 편하게 느껴진 건 이유가 있었다.

우선 맛도 좋지만, 먹는 절차가 너무 단순하지 않은 점이 좋았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새우젓, 들깻가루, 청양고추, 다진 양념 등을 넣는 단계가 존재하고, 토렴을 해서 뜨겁게 나온 순댓국은 너무 빨리 허겁지겁 먹을 수 없기 때문에 강요된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같은 순댓국이라고 해도 때에 따라 순대를 빼거나 고기를 빼면서 주문의 variation이 가능한 점도 메뉴에 질리지 않게 하는 요소였다.


혼밥도 자주 하다 보니 나름의 루틴이 생기게 되었다.

식사 주문 후 에어팟을 귀에 끼고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틀어놓으면 혼자 있는 그 자리가 온전히 나만의 공간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혼자 밥을 먹느니 굶는 걸 택하는 게 자연스럽던 내가, 어느새 이렇게 혼밥의 정서를 이해하고 즐기는 단계에 이른 걸 보니 사회는 정말 변하고 있구나 하는 걸 작게나마 실감하게 된다.


때마침 여러 사람들의 혼밥 경험을 통해 혼밥에도 레벨이 있다는 걸 표현한 게시글을 보게 되었다.

가장 낮은 단계의 혼밥 레벨은 편의점에서 혼밥 하기 그리고 가장 어려운 혼밥 레벨은 술집에서 혼밥 하기라고 한다. 


지금 나의 단계는 일반음식점에서 혼밥 하기이니 레벨 5의 중고수 정도에 이른 것 같은데, 

기왕 시작했으니 궁극의 레벨은 한번 경험해봐야 하지 않을까 도전의식이 생긴다.


이제 밥 먹기 편한 술집을 좀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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