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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Sep 02. 2023

'무빙' 그리고 '무협'

유튜브에 짤막하게 소개되는 하이라이트 영상만으로도 나는 이미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무빙'의 팬이 되었다.


비록 강풀 작가의 원작 웹툰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 보이던 것처럼 등장인물들의 서사를 촘촘히 풀어가는 방식이 좋았고, 

장면 장면에서 일상의 인간관계가 겹쳐 보이는 흥미로운 작품으로 느껴졌다.


정말 흔치 않은 한국형 초능력 액션 히어로물이라는 장르도 매력적 인터라, 

어느새 나는 여기저기서 할인이 되는 스마트한 구독 방법을 찾아 오늘부터 디즈니 플러스 유료가입자가 되어버렸다.


이미 네댓 개의 월정액을 가입한 사람이 굳이 또 새로운 OTT 서비스에 가입하려 생각한 것은 드라마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컸던 까닭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장주원(류승룡 분)의 서사에 강한 끌림이 있었다.


장주원이 현직 치킨집 사장이라는 역할 설정에서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이 연상되었고 

비슷한 유머 코드를 이어가는 단순한 인물인가 생각하던 차에 그의 과거에 대한 서사를 보게 되면서 묘한 끌림이 생긴 것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드라마를 정주행 하기 전이기 때문에 장주원에 대한 나의 공감과 기대는 그가 등장한 몇몇 유튜브 쇼츠와 짧은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초재생 회복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가 보여주는 처절한 액션 장면도 흥미로웠지만, 

그보다 더 내 마음을 잡아 끈 것은 장주원이 훗날 그의 아내가 되는 황지희(곽선영 분)를 만나는 장면이었다.


조직에 배신당해 여관방에 숨어 살던 장주원(류승룡 분)이 평소 흠모하던 다방 종업원 황지희를 만나려고 투숙 중인 408호로 커피 배달을 시킨다. 

그녀는 그의 방에 놓인 무협지를 보고 마치 나이가 들어서도 무협지를 보냐는 듯 핀잔조로 물어본다.


"무협지 좋아하나 봐요. 저거 싸우는 얘기죠?"

"그냥 무협지 아닙니다."

"그럼 뭔데요?"

"멜로 소설이에요."

"아아 멜로?" (안 믿긴다는 듯)

"진짠데요. 무협지는 결국 다 멜로예요. 좋은 사람이 이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며 끝나요."


분명 그렇다.

무협이란 말 자체는 무술에 뛰어난 협객을 지칭하고, 협객은 또 정의감과 의협심을 지닌 자를 이야기하니까 무협의 본질은 '권선징악'과 '사필귀정'의 주제를 가진다.

여기에 대부분의 경우 남녀 등장인물 간의 사랑이 다뤄지기도 하니 장주원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특히 극 중에 노출된 김용 작가의 '영웅문'은 더욱 그렇다. 

주인공 '곽정'의 성장 서사와 '황용'과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너무도 재미있는 이야기였기에 나의 고3 시절 중 상당한 시간을 '영웅문'이 함께 했었다.


무협의 세계에선 어떤 고난과 어려움을 가진 주인공도 그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결국에 정의를 실현하고 복수에 성공한다.

그런 작중의 결과는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판타지가 되어주었다.


무협을 읽고 자란 나는 어느새 나이가 들어가며 세상이 무협세계와 같지는 않다는 걸 느끼고는 한다.

주변에선 정직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보다는 눈치껏 적당히 사는 사람들이 현명한 거라고 얘기들 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좋은 사람이 이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며 끝난다는 결말을 얘기하며 행복해하는 장주원의 미소가 애처롭게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드라마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위안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권선징악이니 사필귀정이니 하는 얘기들이 현실의 부조리를 참고 견딜 수 있도록

사회가 개인에게 주입하는 가스라이팅 같은 것인가 의심스러울 때도 있지만 


여전히 무협이 전달하는 판타지를 동경하고, 그런 결과를 만들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그려진다는 자체만으로도 '무빙'은 볼만한 드라마일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적인 OTT 플랫폼의 경쟁 속에서 우리나라의 콘텐츠들이 지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은 실로 놀라울뿐더러 자랑스러운 일이다. 

'무빙'은 이미 초능력자와 그 능력을 이어받은 다음 세대의 이야기까지 다루는 만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같은 Moving Cinematic Universe를 기대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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