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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Feb 14. 2024

준비하시고 쏘세요

고속도로가 있어서 편리한 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출퇴근 차량이 몰리는 시간이 되면 고속도로의 특정 구간은 차량 정체가 심해져 일반도로보다 못한 저속도로가 되기도 한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은 많고 도로 인프라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으니, 

정부는 상습정체 구간에 버스전용차로를 만들어 대중교통수단에 통행의 우선권을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전용차로를 운영하려면 차선 하나를 비워야 하고, 그러다 보면 승용차 같은 일반 차량의 경우 고속도로를 이용할 때의 정체 부담이 더 커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제도를 도입하여 유지하고 있는 것은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고 이를 통해 교통혼잡을 개선할 수 있으며, 에너지 효율 면에서도 대중교통 이용이 늘어나는 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사람들에게 따르도록 강제하는 기준이나 규칙을 '정책'이라고 한다.


국어사전에서 '정책'을 찾아보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책'이라 정의되어 있다.

'정치적'이란 말만큼 모호한 표현도 없거니와 '목적'이니 '방책'이니 하는 말들이 함께 쓰이니 더욱 모호한 느낌이 있지만, 영어로 정책 즉 'policy'의 뜻을 찾아보면 오히려 쉽게 이해되기도 한다. 


"an officially accepted set of rules or ideas about what should be done"


우리가 생활 속에서 지키고 있는 정책(수단)은 버스전용차로제 말고도 무수히 존재한다.

쓰레기를 버릴 땐 종량제 봉투를 이용하는 것, 주류 구입 시에는 신분증을 확인하는 것, 도로를 이용할 땐 우측으로 통행하는 것 등등...

우리는 각종의 정책적 목표를 위해 법령이나 조례 등으로 규정되어 있는 다양한 제도를 지키며 산다.




정책은 비단 공공 영역에서만 존재하고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백화점에 가보면 각층에 위치하는 점포를 배치하는 것에 대해서도 일종의 정책적 기준이 존재한다.

여성패션과 남성패션은 층이나 구역으로 구분하고, 명품 브랜드는 수요층이 비슷한 것들끼리 배치하고, 패션과 음식점을 같은 공간에 배치하지 않는 경우들 모두 

나름의 노하우와 경험으로 얻어진 백화점의 자체 운영 기준에 의해 정해진다.


만약 백화점 레벨의 정책이 아니라 입점 점포가 각각의 선호와 취향을 고려해서 백화점 내 위치와 영업방식을 결정한다면, 백화점 자체가 주는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전달하긴 어려울 것이며 방문하는 고객 입장에도 대체 몇 층에 가야 원하는 상품을 찾을지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백화점의 실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점은 명확하다.


요즘 많은 식당들이 운영하고 있는 break time도 개별 식당의 운영 정책이다.

식당 주인이 인력 관리나 재료 준비 등 식당 운영의 효율을 위해 break time을 두는 것은 어디까지나 해당 식당의 입장에서 운영 효율을 고려해 결정하는 정책이다.

식사를 하러 오는 손님 입장에서는 식당의 운영정책으로 인해 불편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각자의 입장 때문에 식당주인에게 정책 변경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민간 영역의 사업자가 선택하는 각자의 정책은 스스로 수익을 내어 사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선택한 것이니 그 결과 역시도 사업자가 책임지게 된다.




민간 사업자가 본인의 사업이나 서비스에 적용하는 운영정책이 실패할 경우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것과 달리 공적 영역에서 규정한 정책이 실패하면 그 책임 소재가 모호해지는 경우가 많다.


대형 마트의 격주 휴무제를 예로 생각해 보자.

유통산업발전법과 함께 도입된 규제인 대형마트의 격주휴무제는 골목상권을 보호하여 업체 간 상생을 도모한다는 멋진 대의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대형마트를 규제한다고 해서 골목상권에 사람이 몰리는 효과는 생각대로 확인하기 어려웠고, 오히려 사람들이  편하게 쇼핑할 수 있는 휴일에 마트의 영업을 금지한 것은 이용자들에게 불편만 키울 뿐이었다.

더군다나 온라인 쇼핑의 증가와 함께 새벽배송에 이르기까지 각종 신유통 채널이 등장하며 지금은 대형마트마저도 그 입지를 위협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부가 민간 사업자의 사업 운영 기준, 정책에 개입하는 것은 그래서 참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세상 대부분 일이 그렇듯 모든 판단과 선택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걸 조정했을 때에는 또 그만큼의 결과와 부작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들은 분명 근사한 목표를 갖고 사업자에게 따를 것을 요구하게 되지만, 그 결과는 간혹 원하는 성과로 나타나지 않고 사업자의 생존에 영향을 끼치거나 국민 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정책의 도입에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고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을 정해두고 아무런 설득 과정 없이 어떤 일을 결정해 버리면 그 엄중한 결과에 대해 대체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선거철이 되면 각 정당이 논쟁적 정책을 꺼내 들어 그 정당성을 내세우며 표를 달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하고 꼭 필요한 정책이라면 선거철이 아니어도 충분히 준비해서 소통해야 할 텐데도 굳이 지지층에 어필하기 위해 선거에 임박해 급하게 정책을 내세우는 게 위태로워 보일 때도 있다.


어설프게 검토하고 준비해서 정책의 그럴듯한 명분만을 사람들에게 주장하고,

일단 선거에서 이기고 나면 국민에게 선택받았다는 이유로 충분하게 준비하지도 않은 정책을 밀어붙인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이미 우리는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을까?


선거를 앞둔 요즘의 정치인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제발) 준비하시고 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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