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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Feb 06. 2024

적당한 무관심

얼마 전 어느 노인 요양원의 CCTV에 찍힌 충격적인 장면이 TV 뉴스에 공개되어 충격을 주었다.

화면에는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운 노인분을 거칠게 구타하고 학대하는 직원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소식을 전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학대받은 노인의 따님 분은 "어머니가 혼자서 그런 학대를 겪고 계실 동안 아무것도 몰랐다."며 울부짖듯 자책했다.


이런 소식을 보고 분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부모님이 있고 자기 부모님이 그런 경우를 겪었다고 생각하면 진짜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운 분들의 경우 본인이 받은 불이익을 누군가에게 알리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보니 폭력과 학대에 취약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인권의 사각지대가 줄어들 수 있도록 사람들의 관심과 함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그런데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대해 갖는 측은지심도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최근 모 웹툰 작가가 정신적 장애를 가진 자식을 정서적으로 학대했다는 이유로 특수교사를 고소해 화제가 되었었다.


잇따른 교사분들의 자살로 인해 무너진 교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던 시기여서 일까?

고소인이 대중에게 잘 알려진 유명인이다 보니 더욱 인구에 회자될 수밖에 없었을까?


여론의 형성이 일방적으로 웹툰 작가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에는 불편함을 넘어 안타까운 감정까지 들게 된다.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해서 누구라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고소 고발을 결심할 정도면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를 이루 다 짐작하기 어렵다.


언론에 알려진 단편적인 정보 만으로 마치 모든 경우를 짐작해 알 수 있다는 듯 일방에게 과도한 비난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정당하게 보이지 않았다.


차분히 지켜보면 법률적 판단에 이르는 과정에서 당사자들 간에 필요한 증거와 사정을 듣고 판사가 판결을 내릴 텐데 그에 앞서서 여러 가지 추측과 짐작만으로 빠른 결론을 내리려는 게 과연 맞는가 싶다.


설혹 자신의 마음속에 짐작하고 있는 가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 기반하여 감정을 쏟아내는 표현들이 당사자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겠을까 생각이 든다.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식는 냄비 같은 사회에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고 버티기에 인간은 참 나약한 존재다.  그러니까 아무리 냄비같이 뜨거워져도 다 타버려 다시 쓰지 못할 정도로 뜨거워지는 일은 피해보자고 얘기하고 싶다.


그게 남의 일에 무관심하자는 건 아니다. 

관심을 갖더라도 당사자에 비해 부족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금만 덜 격하게 판단하고 표현하자는 것이다.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무관심 어렵지만 노력해야 할 일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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