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권리의 제한과 활용
조선시대 한양의 육의전은 금난전권(禁亂廛權)이란 강력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금난전권은 시전의 상인들이 상권을 독점하기 위해서, 허가받지 않고 장사를 하는 난전(亂廛)을 금지할 수 있었던 권리로, 시전 상인이 당시 성장하던 미허가 상점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고 정부와 결탁하여 확보한 강력한 독점 상업 특권이었다.
당시 조선에선 등록되지 않은 상인이 늘어나면서 세금 징수의 편의가 훼손되는 걸 막기 위해서 허가된 시전 상인에게만 그러한 특수한 권리를 부여하여 행정 편의를 도모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난전권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에서 보듯 ‘정부와 결탁하여’라는 부정적 표현이 있는 것은 시전 상인이 금난전권을 행사함에 있어 난전 상인의 물건을 부수거나 상인을 구타, 체포하는 폭력적인 방식이 사용되는 경우 등의 부작용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금난전권 같은 특별한 독점적 권리를 특정 상인에게 부여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정책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행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현대의 시장경제 체계 안에서도 정부가 경쟁보다 독점을 허용하는 경우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우는 대체로 독점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사회적 효용을 높여줄 수 있는 경우에 허용된다.
가장 흔한 예가 과거에 국가의 전매로 유통된 담배나 인삼이 그랬었고, 케이블 TV 의 지역 독점체제 역시 그런 예이다.
미국에서 먼저 발전하여 대표적인 유료방송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케이블 TV 산업은 CATV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이때 CA를 Cable의 앞글자를 딴 표현으로 추측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때 CA는 Community Antenna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공중파 또는 지상파라고 불리는 방송의 경우 방송채널 전송을 위해 전파를 사용하고, 이때 방송용 주파수를 수신하기 위해서는 집집마다 TV 안테나를 설치해야 했는데, 전파환경이 좋지 않아 난시청이 심한 지역의 경우 집에다가 안테나를 달아도 TV를 정상적으로 시청하기 힘들었다. 아마도 중년 이상의 사람이라면 예전에 TV 화면이 흔들리는 걸 막기 위해 옥상에 올라가 안테나 방향을 돌려보거나 또는 돌리는 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전파 수신이 양호한 위치에 공용 안테나를 설치하고, 공용 안테나로부터 각 집까지는 유선의 케이블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선명한 TV 방송을 즐겼던 것이 케이블TV의 시초이다. 지금은 공용 안테나 없이 방송사의 콘텐츠를 전용회선으로 케이블 TV 방송센터로 제공받아 거기서부터 다시 각 지역과 고객의 집으로 유선 케이블을 통해 전송하는 게 일반적이다.
'90년대 중반까지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은 주로 소규모 지역 단위의 사업자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중계방송사업자(RO)로 불리던 이들은 작게는 몇 개 아파트 단지나 몇 개 동 규모의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영세한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공사비가 많이 들고 주택이 별로 없는 지역에는 굳이 케이블을 깔기 어려웠고, 투자 회수가 가능한 지역에 한정하여 사업을 하고는 하였다. 이런 중계사업자들이 가구 당 이삼천 원 안팎의 수신료를 받아 화질 좋은 방송 수신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이렇게 영세한 사업자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보니 선진국과 같이 다채널 콘텐츠를 공급하는 케이블 TV 산업의 성장이 어려운 환경이었다.
당시 정부의 생각은 다채널 유료방송 산업이 성장하면 방송 콘텐츠의 다양성도 확보되고 새로운 산업 육성에 따른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지만 그런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일단 케이블 TV 시청 가능한 인구의 확대가 가장 선행 조건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시장에 난립한 중계방송 사업자들보다는 규모 있는 유료방송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는 케이블 TV 사업자를 먼저 등장시켜야 했고, 사업 초기의 방송신호 전송망 투자 부담을 감내할 수 있도록 지역별로 방송권역을 정해 지역 내의 독점적 사업 권리를 보장해주었다.
이 과정에서 케이블TV 회사들은 기존에 난립해있던 중계방송사업자들을 인수합병하는 방식으로 독점 방송권역을 확대하며 성장해갔다,
그렇게 지역마다 사업을 독점한 사업자가 생겨나다 보니 경쟁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고, 그들의 이익에 맞춰 추가적인 투자를 해가면서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점적 위치를 바탕으로 성장해온 케이블TV사업은 경쟁자인 IPTV의 등장과 함께 쇠락의 길로 내몰리게 되었다.
초기에는 얼핏 서로 다른 서비스처럼 보였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효용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경쟁 서비스가 등장함으로써 독점으로 보호받던 케이블TV는 점차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지역 기반의 향토 건달 앞에 전국구 조직이 세곳이나 발을 들여놓고 싸워대니, 그틈에서 배겨나는게 쉽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니었을까.
결국 어느 시대의 어느 사업을 보더라도 독점적 권한을 항구히 가져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게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다른 경쟁자가 당연히 생겨나고, 돈이 안되는 일이라면 더군다나 지속되는게 어려우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 시장과 규제의 흐름을 잘 타야만 해당 영역의 사업자들은 지속가능한 생명력을 갖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겠지만 한때 국민 모두가 가지고 있던 이동호출기기 일명 삐삐 역시 특정 시대의 아이콘처럼 많은 이에게 활용되었지만 지금은 그 존재 자체가 희미해진지 오래다. 한때는 정부로부터 독점적 사업권한을 받아서 운영되던 이런 사업들이 어느새 퇴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독점은 어떻게 시장을 키우고 왜 계속되지 않는 것인지 다양한 사례에서 그 이유를 찾아가보고자 한다.
힘닿는 대로 아이템 별로 어떤 보호 속에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어떻게 그 위치를 활용하다가 어떻게 그런 힘을 잃는 것인지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