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와 성과

by 랜덤초이

CEO는 다른 임원이나 일반 직원들과 다르게 더 높은 수준의 꿈을 꾸고 목표를 제시하곤 한다.

이는 각자의 역할을 생각하면 확실히 합리적인 바이다. 개개의 임원이나 직원은 자기가 가진 역할과 재량의 한계를 고려하여 책임질 수 있는 범위의 목표를 가지려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런 바운더리를 넘어 생각하거나 요구할 권한이 있는 CEO 라면 당연히 더 높은 이상적 목표를 추구하는 게 당연하다.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도 CEO가 꿈꾸고 임직원이 이를 자신들의 꿈으로 함께 실현해가려 할 때, 우리는 그런 꿈들이 실현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런 꿈같은 목표가 너무나 단기적인 압박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면 무리한 업무수행에 의해 재앙 같은 결과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지난 '16년 크게 화제가 되었던 미국 웰스파고 은행의 유령 계좌 사건을 봐도 그렇고, 국내의 경우에도 IMF 이후 큰 문제가 되었던 신용카드 대란은 단기 목표에 대한 무리한 압박의 결과가 조직을 어떻게 몰아가서 무슨 결과로 나타나는지 잘 보여주었다.

정작 문제가 드러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목표 달성에 심취하여 사업의 본질적인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몰랐거나 무시했다는 점에서 목표에 대한 무조건적 몰입이 조직의 건전한 사고를 방해한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CEO는 높은 목표만 제시한다고 해서 본인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당연히 아니다.
그 목표를 위해서 일하는 임직원들이 제대로 전략을 수립하여 실행해가는지를 관찰하고 조정하는 것 역시 CEO의 중요한 역할이다.


문제가 커져가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파국의 길로 달려갔다면 그런 회사는 실력이 없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위에 예로 든 사례같이 사업에 큰 영향을 주는 일들은 사실 해당 회사 조직의 내부에서 충분히 현실을 경고하고 조정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경고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황으로 내몰려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는 책임은 더욱더 전적으로 CEO가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기를 알아도 아무도 CEO의 목표에 반하는 말은 하지 못한 것이었다면 그런 조직문화를 만든 CEO의 책임일 뿐이다.

직원 모두가 무능하기 이를 데 없어 그런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어도 그런 사람들에게 그만한 역할과 책임을 맡긴 CEO가 책임져야 한다.

아주아주 양보해서 아주 악한 생각을 가진 누군가가 작정하고 CEO를 속여서 문제를 감춘 것이라고 하더라도 CEO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그 역시 그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CEO의 문제이니까.


어쩌면 CEO가 궁극적인 기업의 목표를 제시한다고 해서 그에게 너무 가혹한 기준을 들이대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현실 세계에선 사치에 가깝다.


일본에서 몇 년 전 유행한 단어 중에 손타쿠(そんたく)라는 말이 있었다.

그 어원은 시경(詩經) 교언(巧言) 편의 忖度(촌탁)에 나온 말이라는데 원래의 뜻은 "타인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내가 헤아린다.(他人有心 予忖度之)"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좋은 뜻을 가진 단어가 일본에선 참으로 허무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윗사람이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아도 눈치껏 알아서 하는 행동'을 말한다니...

이런 식의 행동이 방치되고 오히려 처세의 묘수인 양 이야기되는 것은 부끄러운 현상일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인 '한자와 나오키'에서 은행의 중역인 오오와다 상무는 과장된 몸짓과 말투로 이렇게 얘기한다.

"부하직원의 공은 상사의 것, 상사의 실수는 부하직원의 책임!"

이 같은 얘기를 당당히 부를 짖을 수 있는 기업(은행) 문화라니 참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런 경우를 우리나라에서도 그리고 나의 경험에서도 많이 봤던 것은 사실이다.


CEO가 두리뭉실한 선언적 목표를 내세우고, 부하 임직원이 해온 일들 중에서 그 목표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일로 성과를 포장하는 일이 그러하고, 목표에 못 미치는 성과가 예견되면 희생양부터 찾는 일이 실제로 많이 벌어지니 말이다.


그러니까 CEO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더욱 가혹한 기준으로 목표와 실행된 결과가 정말 인과관계를 갖고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통찰하는 것이 필요할 법하다.


무책임하게 높은 목표를 제시하고, 과정의 공정함이나 절차적 하자를 무시한 체 결과를 포장하여 성과로 만들거나 책임 지우는 CEO 라면 그 사람이 떠나고 나서 조직이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되는지를 보면 그 공과를 다시 볼 날이 분명히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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