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과거는 나에게 안전한가
"난... ㄱ ㅏ끔... 눈물을 흘린 ㄷ ㅏ ...."
한 연예인은 싸이월드에 남긴 감성과 허세 가득한 표현으로 인해 수년간 많은 패러디와 짤로 희화되는 유명세를 치렀다.
최근 싸이월드 서비스가 재개되고 당시의 추억을 소환하는 TV 예능 특집이 방송되기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추억과 낭만을 회상하기도 하지만, 자신도 잊고 지내던 자신의 낯선 글이나 사진 등 기록물을 본다는 것은 항상 즐겁고 행복한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십 년간 정상급 연예인으로 사랑 받으며 늘 대중의 옆에 있던 것 같은 가수나 배우마저도 TV 프로그램에서 본인의 데뷔 초창기 모습을 보게 되면 당황하고 당혹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되는 일인지 새삼 생각할 때도 있다.
디지털 혁명 이전의 시대에 기록물을 저장/관리한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고, 나아가 기록을 생산하는 것 역시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필요로 했다.
생각해보면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이뤄지며 90년대 초중반에 배낭여행의 붐이 일었던 시절이 있었다. 많은 대학생들이 항공권과 유레일패스를 끊어 유럽을 여행하면서 처음 보는 세상과 마주하고 있었을 때, 그들은 무거운 카메라에 비싼 필름을 갈아 끼우며 24장 또는 36장의 제한된 촬영 기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고심했었다.
필름을 갈아 끼우다가 실수로 빛에 노출시키기라도 하면 사진을 날려버리는 일도 생겼으니 기록이란 것에 그만한 위험과 노력이 수반되는 것인가도 싶다.
촬영을 하고 나서도 현상하기 전에는 사진이 잘 찍혔는지 눈을 감고 찍은 것은 아닌지 확인할 수도 없었고, 돈 들여서 현상소를 찾아 필름을 사진으로 인화한 뒤에도 앨범을 잃어버리거나 하면 나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기록은 어느새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기록과 저장에 들이는 노력과 비용은 거의 고민할 수준이 아니게 된 것이 현실이다.
요즘 웬만한 프로 전문가가 아니라면 외국여행을 가면서 무겁게 카메라까지 들고 가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수백만 아니 천만 화소를 넘어가는 카메라와 수백Gb의 저장공간을 가진 스마트폰 하나면 4K 고화질의 동영상 촬영도 가능하니 말이다.
(참고로 필자가 30년전 무려 200만원을 들여 장만했던 첫 PC 저장용량은 40Mb 였다. 지금 쓰는 스마트폰의 저장용량이 512Gb 이니까 손바닥 위에 당시 컴퓨터 저장용량보다 무려 1만3천배의 저장용량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록들이 클라우드에 있는 저장소로 자동 저장되는 세상을 살고 있으니 그야말로 현대사회는 기록과 저장의 유토피아가 된 것인가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앞서 예를 들었듯 그것이 나의 이미지이든 생각이든 간에 자기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이 반드시 축복일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지금의 기준에서 봤을 때 촌스럽게 느껴지는 과거의 내 모습이 부끄러울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과거에 비해 초라해진 지금 나의 모습 때문에 과거를 다시 보기 싫을 수도 있다.
과거에 남겨놓은 글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있는게 부끄러울 수도 있고, 과거와 다른 상황이 생겼는데도 과거의 말로 인해 현재를 구속받을 수도 있다.
나의 지나온 삶의 흔적이 기록으로 박제되는 세상이 된 지금
언제 누구에게 들춰지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바뀌는 것인지 세상이 바뀌는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의 나를 바라본다는 것이 옳은 관점인지도 모르겠다.
넘쳐나는 기록물로 숨기고픈 나의 과거가 의도치않게 드러나기도 하는 세상을 사는 지금
그저 하루하루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사는 것 외에 또 뭘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 있을 때에 그때는 나의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