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랬구나 그래서 그런 거였어
유튜브의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은 정말 그 로직을 알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어떤 이유로 뭘 추천해주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지만, 그렇게 추천된 콘텐츠를 또 하나둘씩 눌러서 감상하고 있는 나 스스로를 보면서 얘네가 진짜 신묘한 추천 기준이 있는가 싶을 때가 있다.
오늘 출근길에 우연히 관심을 끄는 제목의 동영상을 발견했다.
'언어는 생각의 감옥인가?'라는 도발적 제목의 콘텐츠였는데, '5분 뚝딱 철학'이란 채널에서 제공하는 내용이었다. 5분만 보면 되나 보다 하고 무심히 재생을 눌렀는데 13:10 초나 이어진 내용에 정직하지 않은 채널명이군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재미있는 내용의 영상이었다.
언어 결정론을 설명하며 사람들은 언어의 틀 안에 생각이 영향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 있었고, 그러한 증거로 남성 명사와 여성명사를 구분하는 나라의 언어 예가 소개되었다.
다리(bridge, 橋閣)라는 단어는 스페인에서 남성 명사이며 독일어에서는 여성명사라고 한다.두 나라의 사람들에게 똑같이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사진을 보여주고 어떤 느낌이 드느냐고 물어보았을 때 스페인 사람들은 '장엄하다', '웅장하다'라는 표현이 많은데 비해 독일 사람들은 '아름답다', '우아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연구 사례 등을 보면 언어가 생각을 좌우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언어가 생각의 감옥이란 도발적 제목이 표현된 것이었다.
영상의 결론에는 생각과 언어가 결국 같은 것이라며,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설명하고 있었다. '언어는 세계와 일대일 대응한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
이 주장을 바탕으로 채널에서는 영상의 결론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짧지만 뭐라 단정 지어 결론내기 힘든 이 철학적 주제의 영상을 감상하면서, 나는 중학생 시절 나의 부끄러운 경험을 떠올리게 되었다.
당시 우리 동네에는 통일교 선교를 위해 국내에 거주하던 미국인 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예닐곱 살쯤 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워낙 귀엽고 예쁘게 생긴 꼬마였었다.
그 꼬마는 동네에서도 아주 유명하여 부모님 없이도 혼자서 이웃집에 놀러 오곤 하였고, 동네 어른들은 그 귀여운 꼬마가 놀러 오면 맛있는 간식도 챙겨주고 말이 통하지도 않는 아이에게 손짓 발짓으로 호의를 표시하며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보니 그 꼬마가 우리 집에 놀러 와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중학생인 내가 그 꼬마와 어울려 놀아주다 보면 영어실력이 늘지 않을까 하여 꼬마와 함께 먹을 간식을 준비해주셨고, 나는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눈높이로 놀아주기 위해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술래잡기 같은 놀이를 하고 놀았다.
그러다 꼬마는 우리 집 거실 전축 옆에 있는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앨범을 발견하고
마이클 잭슨의 이름을 외치며 매우 반가워했다.
난 그 꼬마 친구에게 나도 마이클잭슨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 "Thriller" 앨범 이후에 "Bad" 라는 것도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꼬마는 깜짝 놀라면서 내게 되묻는 것이었다.
"Why is Michael Jacson Bad?"
나는 아차 싶었던게 아마도 나의 아주 짧은 영어 실력에 뭘 잘못 말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니 마이클 잭슨이 나쁜 사람이란게 아니고, 내가 얘기한 거는 MJ가 새로 앨범 낸 이름이 Bad 란 거야.' 이렇게 바로 정정해서 얘기했어야 했는데, 당시 나의 영어 실력은 아주 형편없어서 그 정도 문장을 바로 만들 수 없었다.
그런데 꼬마가 커다란 눈으로 궁금하다는 듯 나의 눈을 계속 쳐다보면서 대답을 기다리는데 난 당황해서 뭐라도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끄럽게도 그때부터 아주 짧은 2형식, 3형식의 문장을 이용해 마이클잭슨이 나쁜 사람인 이유를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만들어서 설명했다. 그러자 그 꼬마는 내가 하는 말뜻을 알 수 없다는 듯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날 그 건으로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ㅠㅜ ... 그 이후로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에게 그날의 당황스러움은 머릿속 깊숙이 기억되어 있었다. 말이 되지 않으니까 생각이 그게 아닌데도 전달할 수 없었던 경험은 시간이 갈수록 부끄럽고 참담하단 생각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다.
여기서 이 얘기가 그나마 해피엔딩으로 남으려면 그 이후 내가 절치부심 공부하여 영어에 능숙해졌어야 하는건데, 아쉽게도 아직 내 생각을 영어로 옮기려면 생각한 만큼 잘 전달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것도 언어결정론의 사례일까 싶지만, 난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마이클 잭슨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이 글을 빌어 이유없이 나쁘게 표현되었던 고인이 된 전설 마이클잭슨씨와 당시의 동심에 상처 받았을 이웃 꼬마, 그리고 영어실력 좀 늘어보라고 기대를 가지셨었을 어머님께 죄송한 마음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