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고 싶은 소박한 이유

by 랜덤초이

누군가에게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하면 이름 석자(어떤 이는 두 자 또는 여러 자일 수도...)만 얘기하면서 "누굽니다"라고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보통은 "어디 사는 누굽니다", "어디 다니는 누굽니다" 또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 누굽니다"라고 대답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소개에 활용하는 부가 정보로써 소속 집단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항상 그런 상태인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학교의 학사 일정 상 졸업식은 2월 초에 하고 입학식은 3월 초에 한다.

그러다 보니 졸업은 했는데 아직 입학하기 전까지 몇 주간의 기간이 있게 되고 그동안은 내가 백수라고 생각된 적이 있었다.

그런 시기는 국민으로 가족 구성원으로 말고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애매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학생일 때는 상위 학교로 배정되어 진학을 앞둔 상태이니까 소속에 대한 정체성이 아리송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고3 여름방학이 되었을 때였다.

갑자기 '만약에 내가 대학 입시 시험을 망쳐서 진학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게 되면 나의 소속은 뭐가 되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누가 뭐하냐고 물어보면 재수학원 이름을 대야 하나? 그냥 재수생이거나 입시준비생이 되는 건가? 재수를 하면 내년 말에는 소속이 확실히 생길까?

그전까지는 나의 소속집단에 대해 별다른 고민이 없었던 터라 갑작스러운 의문이 걱정되는 큰 고민으로 다가왔고, 그 때문에라도 필사적으로 재수를 하면 안 되겠다는 절박한 감정이 생겼던 것 같다.


학업을 마치고 회사에 입사한 이후, 회사 바깥에서 나를 소개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나는 그냥 "누굽니다"가 아니라 "어느 회사에 다니는 누굽니다"라는 말이 익숙했다.
그러다 보니 기왕이면 회사의 사회적 인지도가 높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용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회사 안에서 소속된 부서도 기왕이면 '전략'이나 '마케팅' 같은 이름이 붙은 소위 폼나는 부서에서 일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었다.


그리고 첫 직장에서 8년 차쯤 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이직을 경험했다.

당시 회사에서 겪었던 극심한 스트레스와 장래에 대한 불안, 새로운 영역에서의 도전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이직한 것이었다.

퇴사를 한 이후, 이직하기로 되어있던 회사의 입사예정일 까지는 약 2주 정도 시간이 있었고, 나는 그 기간을 이용해서 당시 일본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친구를 만나러 여행을 떠났다.


공항에서 출입국 서류를 작성하면서 직업/직장명을 써야 했을 때, 갑자기 고3 여름방학 때처럼 소속집단에 대한 정체성의 혼돈으로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퇴직을 마무리한 전 직장의 이름을 쓰는 건 정직한 것 같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직 입사 처리가 완료되지 않은 입사 예정기업의 이름을 쓰는 것도 같은 마음이 들었다.

무직이라고 적으면 출입국 과정에 불이익이 있을 것 같기도 해서 더욱 고민되는 마음이 컸다.

결국 전 직장인지 다음 직장인지 이름을 적었기는 했는데 마음이 꽤 불편한 심정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일들을 겪는 동안 직장과 직업에 대한 고민을 해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오랫동안 나는 내가 소속된 직장과의 관계가 영원할 것 같았고, 나의 직장이 내가 바라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직장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살아왔고, 내가 열심히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 그렇게 될 거다 라는 생각으로 지내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 노력과 관계없이 나의 희망과 기대만으로 세상이 움직이지 않는 걸 알게 되면서 직장과 나를 동일시해서 생각하는 건 상처받는 경험을 갖게 되는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직장이 아닌 직업을 갖는다는 건 아주 부러운 일이었다.

어떤 특정한 소속 집단에 매여있기보다 나 혼자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준다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문예지에 등단하는 작가 같은 거창한 꿈도 아니고, 무슨 베스트셀러 작가처럼 경제적인 성공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소속된 집단이 아니라 나 자신이 온전히 생각하여 나의 삶과 경험, 가치를 쓰고 나눠서 공유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Occupation : Writer


소박하게는 출입국카드를 적을 때 위축될 필요도 없고,

더 나아가서는 나의 생각을 글로 남겨서 내가 꿈꾸고 옳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모습을 누군가가 볼 수 있고, 이 글을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왜 이렇게 살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가 이해할 만한 기회를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내 목표는 넘치게 이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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