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막이옛길에서 만난 시인

by 랜덤초이

충북 괴산에는 산막이 옛길이란 관광지가 있다.

산이 막아선 길이란 뜻으로 임진왜란 당시 피난길에 나선 사람들이 산에 가로막혀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정착해 살았던 데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좀 힘든 코스를 피해 괴산댐 근방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기도 하고, 튼튼한 분들은 높낮이가 있는 4km의 탐방로를 오롯이 걸어서 이동하기도 한다.


작년에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는 몇몇 동료분들과 창립기념일 휴일을 맞아 함께 이 산막이 옛길 트래킹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같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끼리는 일정을 맞추기 수월하니까 일 년에 한두 번은 가족들도 모르게 자유로이 이런 일탈을 즐기기도 하였다.


사실 괴산은 태어나서 처음 방문해보는 지역이었다.

괴산이라는 지명은 예전부터 익히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직접 해당 지역을 방문한 건 처음이었고, 4월의 봄기운에 옛길 따라 피어난 봄꽃들을 보면서 가족과 함께 왔더라면 좋았겠다 하고 또 곧 아쉬워지는 걸 보니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에는 정말 방방곡곡에 이렇게 예쁜 장소가 많구나 생각하며 절경을 감상하다가 우연히 길가에 전시된 시화를 보게 되었다.

꼬불꼬불 알아보기도 힘든 한글과 두세 가지 색깔의 사인펜으로 끄적이듯 그린 그림이 그려진 보드판들은 동네에서 늦게 글을 배우신 할머니들이 쓰신 자작시를 전시한 것이었다.

대충 훑어보고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위치에 전시되어 있었지만, 경사로를 올라가며 숨이 차던 상황이었던지라 잠시 서서 몇몇 시화를 감상하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잘 정리된 시와는 거리가 있었고 상상을 넘어 선 오타와 날 것의 단어들이 눈에 띄어 할머니들의 습작에 웃음 짓게 되었는데, 어느 한 할머니의 시를 읽다가는 갑자기 마음에 턱 하고 슬픈 마음이 드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분명히 읽으면서 대단한 운율이 느껴지거나 세련된 단어가 사용되었다거나 한 글은 아니었는데, 뭔가 그 글을 쓰신 할머니의 마음이 전달되면서 갑자기 울컥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글을 살펴보던 동료들 역시 그 글의 느낌이 남다르다 얘기하는 걸 보니 비단 혼자의 생각은 아니었던 듯하고, 사진 찍어 가지고 와 식구들에게 보여주었을 때도 뭔가 시를 쓰신 분의 마음이 느껴진다고 하는 걸 보니 시가 진심을 전달하는 것 같았다.


보통 작품의 저자나 권리자가 허락하지 않으면 그 내용을 다른 곳에 옮기는 게 무례라는 건 알지만, 해당 글이 산막이 옛길에 공유를 목적으로 상당기간 전시되어 있었기에 조심스레 소개해보고자 한다.



새싹

-구정희-

봄이 오니 즐겁다

우리 마당에는 싹이 파릇파릇

하루하루 다르다


사람은 한번 가면 고만인 걸

봄이 되면 새싹은 파릇파릇 올라온다


울 남편 간 자리 그대로

봄이 되어 남편 돋아나면 좋겠다.


먼저 간 할아버지를 보고 싶은 마음을 담담히 시에 녹여 쓰신 글을 보면서, 남편이 돋아나면 좋겠다는 그 마음에 애틋함이 헤아려지며 내게도 울림이 전달되었다.


사실 글이란 게 참 신기하다.

정성껏 긴 글을 쓴다고 원하는 만큼 생각이 전달되는 것도 아니고, 진심이 담겼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전달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이해해줬으면 해서 쉽게 쓰려다가 장황해지기도 하고 짧게 요약해서 전달하려니 글의 요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도 한다.


어느 시인의 글은 재치 넘치는 한두 줄의 글로도 수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어느 작가의 대하소설은 평생을 걸려 쓰다가도 마무리되지 않기도 한다.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나 역시 내가 쓴 글을 다른 이가 읽어주길 바라는 입장이다 보니, 나의 글을 보고 다만 한두 개의 글이라도 내가 산막이옛길에서 만난 할머니의 시에서 느꼈던 것처럼 타인에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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