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더하기

by 랜덤초이

작년에 MBC 예능 프로그램인 "놀면 뭐하니"에서 SG워너비 같은 남성 보컬그룹을 데뷔시킨다는 목적으로 MSG워너비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유재석 씨의 블라인드 오디션 만으로 가수와 비 가수 연예인이 함께하는 2개의 팀이 선발되었고, 선발된 팀은 그들의 데뷔곡이 완성되기 전에 걸그룹 라붐이 부른 '상상 더하기' 란 곡을 리메이크해서 부른 적이 있었다.


노래의 가사 중 "상상에 상상에 상상을 더해서"라는 부분이 귀에 쏙쏙 박히는 게 킬링 파트라고 느껴졌고,, 한동안은 TV를 틀거나 라디오를 들으면 여기저기서 그 노래를 듣게 되면서 노래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자주 듣게 되니 자연스레 내 머릿속과 입안에서도 자주 흥얼거려졌고, 노래의 가사는 당시에 내가 겪고있는 상황과 연결된 고민 때문에 다른 가사로 불러지기도 했다.


내가 일하는 직장은 만 명에 이르는 직원이 근무하는 대기업이다.

처음 입사했을 당시에는 2백 명 남짓의 직원이 있는 신생기업이었지만 이후 이십여 년간 사업의 확대와 인수합병 등을 거쳐 지금의 규모가 되었다.


처음 입사했을 당시에는 전체 직원수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회사의 대부분 사람을 알고 지냈다.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고', '무슨 일을 하려면 저 사람한테 물어봐야 하고', 한 다리만 건너도 다 아는 사람들이라서 일하는데 막힘이 없었다. 담당자가 정해지지 않은 새로운 일들도 많다 보니 급하고 중요한 일이면 아무라도 붙어서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상황은 대기업이 아닌 벤처 스타트업처럼 일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정말 꼭 해야만 하는 본질적인 일만 중요했고 나머지 일들은 크게 신경도 쓰지 않던 그런 환경이었다.


그런데 회사가 점점 커지면서 "관리"라는 것이 중요해지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에 같으면 인사, 총무, 경리 같은 필수 관리 업무를 한 두 팀이 맡아서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회사가 커지고 관리해야 되는 대상 인원의 규모가 증가하면서 관리의 주체도 함께 커지고 조직화되게 되었다.


회사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증가하는 관리업무도 있지만, 외부 요인인 법제도의 변화에 따라 관리 의무가 추가되기도 하고, 두 가지가 병합하여 관리 필요가 더욱 늘어나기도 한다.

일례로 주 52시간제 도입 과정에 300인 이하 사업장에는 의무 적용 시점이 달라지기도 했던 것처럼 회사의 규모에 따라 법적 의무가 부여되기도 예외가 되기도 한다. 물론 조직이 커지고 빼박 대기업인 이상에는 주요한 규제에 있어 법적 의무에서 예외 적용 대상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렇게 회사 안팎의 이유로 관리 업무는 점점 늘어나게 된다.

인사, 총무, 경리 같은 분야는 점점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채용, 교육, 조직문화, 정보보안, 개인정보보호, 부동산, 안전, 노무, 법무, 세무, 재무, 금융, IR 등등의 업무 조직으로 늘어나고, 전문화된 관리 조직이 법적 요건 충족이나 조직 미션 달성을 위해 현장에 요청하는 업무는 점점 증가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법정 필수교육부터 해서 각 관리 조직의 필요에 의한 현장 서베이까지 다양한 요청사항들이 현장에 전달되게 된다.


인사, 총무, 경리 같은 보편적인 관리 조직은 아니지만 각 사업의 영역에서 고유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특정 업무기능을 스탭의 일로 분리해 조정함으로써 스탭이 늘어나기도 한다.

사업에 필요한 장비 제조사를 상대하기 위해 기술지원 업무를 전문화하려고 전문 기술팀이 만들어지고, 그런 협력 관계의 제조사가 늘어나거나 분화됨에 따라 전문 기술팀도 늘어날 수 있다.

업무 프로세스가 분화되가면서 기능에 따라 새로운 스탭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관리하는 팀, 현장 매장을 관리하는 팀, 판촉물을 관리하는 팀, 현장 교육을 운영하는 팀, 차량이나 자산을 관리하는 팀 등이 그런 예이다.


이러다 보니 어느 시기에는 현장 인원의 증가보다 스탭 인원의 증가가 더욱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스탭의 일이란 게 결국 스스로의 조직 단위에서 마무리되어 정보로만 보고/공유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장과 연계하여 실행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스탭의 증가는 현장 업무의 증가로 이어지고는 한다.


그렇게 하나 둘 현장에 실행을 요구하는 일이 많아지면, 현장에서는 일의 우선순위라는 면에서 고민이 커지게 되고 업무의 누락이나 품질 저하도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현장의 실행을 모니터링하고 체크하는 중간 관리 전담 스탭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수많은 스탭과 관리조직이 현장 조직에게 무슨 일을 어떻게 하라고 가이드라인과 정책, 매뉴얼 등을 만들어서 제공하는데 정작 '현장에서 그런 일을 모두 할 만큼 리소스가 있는지', '진행 상의 문제는 없는지' 등을 고민하고 판단하는 절차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조직이 운영되다 보면 문제가 생겼을 때 스탭은 현장을 블레임 하고 현장은 자기 방어를 위해 스탭의 지침과 가이드라인에서 불완전하거나 불합리한 부분을 찾게 된다.


스탭과 현장이 서로를 멀리해서 생각하게 되는 만큼 회사에 손해가 되는 일은 없다.

현장을 모르는 스탭과 스탭을 무시하는 현장이 당연하게 되면 그런 관계에서의 조직 간에 시너지를 기대하기는 당연히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당시에 그래도 현장에 가까운 부서에서 일하느라 점점 늘어나는 스탭의 관리 부담에 지쳐갈 때, 내 입에 맴도는 노랫말은 귀로 듣던 가사와 다르게 웅얼거려지고 있었다.


"관리에 관리에 관리를 더해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산막이옛길에서 만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