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 세대의 담론

by 랜덤초이

술기운이 오르면 선배는 어김없이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의 문장 속에서 ‘요즘 애들’은 조직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주범이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외계인과 같았다. 밥 한 끼 같이 하자는 제안을 ‘개인 일정’이라는 단칼에 잘라버리는 후배들의 뒷모습을 보며, 선배는 자신이 평생 쌓아온 가치관이 부정당하는 듯한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이 변화의 파도는 과연 특정 세대의 잘못일까.


먼저 후세대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의 소위 ‘싹수없음’은 사실 생존을 위한 진화에 가깝다.

선배 세대가 성실과 인내를 자본 삼아 ‘성장’의 사다리를 올랐다면, 지금의 세대는 저성장과 불확실성이라는 척박한 토양 위에 서 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 조직을 향한 무조건적인 헌신은 미덕이 아니라 위험한 도박이 되었다.


그들에게 선배와의 술자리는 끈끈한 유대감이 아니라, 소중한 자기계발의 시간을 앗아가는 ‘비효율’ 일뿐이다. 후배들은 변한 것이 아니라, 변해버린 시스템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생존 방정식을 풀고 있는 셈이다. 그들에게 ‘선배의 권위’보다 ‘나의 시간’이 소중한 이유는, 회사가 더 이상 나의 노후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냉혹한 진실을 일찍 깨달았기 때문이다.

반면, 선배 세대가 느끼는 분노의 기저에는 ‘보상 심리’와 ‘지도의 상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윗세대의 부당한 대우를 견디며 “나중에 내가 선배가 되면 대접받겠지”라는 암묵적인 약속을 믿고 버텼다. 그러나 막상 본인이 그 위치에 서자, 세상은 ‘민주적 소통’과 ‘수평적 문화’를 말하며 그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위를 빼앗아 갔다.


이것은 전 세대의 잘못이라기보다 그들이 가진 ‘지도의 유효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극이다. 과거의 성공 공식이 현재의 오답이 되었음에도, 자신이 배운 길만이 정답이라고 믿는 고집은 결국 후배들과의 단절을 초래한다. 선배의 분노는 사실 후배를 향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믿어온 세계가 무너지는 데서 오는 공포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 갈등의 가장 큰 배후는 ‘시스템’과 ‘기술’이다. 과거에는 선배가 가진 경험과 정보가 곧 권력이었다. 일을 배우려면 선배의 입을 바라봐야 했고, 술자리에서 나오는 ‘꿀팁’은 생존 전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업무 매뉴얼은 사내 게시판에 있고, 모르는 것은 검색 창이나 AI에게 묻는 것이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 기술이 선배의 권위를 대체해 버린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보상 체계 역시 무너졌다. 조직에 충성해도 내 집 마련은 멀어지고, 성실한 직장인보다 코인이나 주식에 성공한 이들이 영웅시되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후배들에게 ‘조직의 화합’을 강조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결국 세대 갈등은 시스템이 주지 못하는 보상을 서로에게 요구하다 발생하는 불협화음이다.



결국 ‘세상이 변했다’는 말은 누구의 잘못을 가리는 판결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저 우리가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다는 ‘시차 확인서’에 가깝다. 선배는 뜨거웠던 성장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고, 후배는 차가운 생존의 현실을 걷고 있다.

선배가 술잔을 기울이며 분해할 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는 후배들을 바꾸겠다는 약속이 아니다. 대신 그가 믿어온 가치가 그 시대에는 분명히 옳았음을 인정해 주고, 이제는 그 짐을 내려놓아도 된다고 다독이는 것이다. 세상은 변했고, 그 변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탓하느냐가 아니라, 이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어떻게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따로 또 같이’ 걸어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다. 선배의 술잔에 담긴 분노가 조금은 가벼워지기를, 그리고 후배들의 냉정함 속에 숨겨진 불안을 선배가 한 번쯤은 들여다봐 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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