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격적으로 과장(誇張)하거나 과시(誇示)하는 일에 익숙하지 못했다.
스스로를 내세워서 얘기하기보다는 남이 알아봐 주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란 생각이 있기도 했고,
내가 과장하여 내세운 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부끄럽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크게 기대한 일이 그에 미치지 못했을 때의 실망은 별 기대가 없을 때보다 훨씬 실망스럽기 때문에 더욱이나 나에 관련된 일이라면 확실한 것만 기대하고 오히려 실망을 대비해서 보수적인 전망을 하고는 했다.
고등학생 시절 모의고사를 본 후 가채점(假採點)을 할 때도 이런 성격은 확연히 드러났다.
친구들의 경우 스스로 채점한 점수에 비해 공식 채점된 점수가 실제로는 더 낮게 나오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나의 경우엔 항상 내가 채점한 점수보다 오히려 5% 내외의 높은 점수가 나왔다.
주로 서술형 주관식 문항의 답을 약간 애매모호하게 적었거나 객관식 문항의 답을 정확히 기입했는지 헷갈릴 때에 내가 손해 보는 쪽으로 가정하고 정리하다 보니 그런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취미생활이나 어떤 새로운 일을 준비할 때도 내게는 남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다른 사람들이 일단 시작하고 그냥 저지르는 경우도 많은데 비해서 나는 머리가 먼저 이해 가야 움직일 수 있었고 준비 도구를 갖춘 후에야 일을 시작하는 성격이었다.
나 스스로는 이런 성격이 진취적이지 못하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서 고쳐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난 나는 갑자기 겨울 바다를 보고 싶었다.
얼마전 TV 드라마에서 보았던 장면에서 중년의 남자배우가 아무도 없는 새벽 바닷가에서 혼자 겨울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씬이 너무 멋있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도 겨울바다를 보러 무조건 동해로 떠나보자 라는 생각을 했을 때, 내 머릿속에는 또 여러 가지 부수적(附隨的)인 생각이 떠올랐다.
‘친구랑 같이 갈까?’, ‘가면 점심은 누구랑 먹지?’, ‘다녀올 때 버스표는 있을까?’, ‘돈이 얼마나 들지?’, ‘가기 전에 돌아오는 표를 사둬야 하나?’, ‘그냥 가서 돌아오는 복편(復便) 표를 못 구하면 자고 와야 하나?’, ‘그럼 내일 수업은 어떡하지?’, ‘부모님께 말은 하고 갈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음에도 나는 일단 그냥 떠나는 걸 선택했다.
나의 많은 생각과 계획성이 나의 시도를 가로막는다는 생각이 컸던 지라, 나도 한 번쯤 충동적으로 일단 떠나고 나중에 생각해보자 라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스스로의 본성을 거스르고 무작정 떠난 여행은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당시 강원도로 가는 도로 여건이 좋지 않아서였겠지만 서울에서 강릉까지의 고속버스 표준 운행시간은 3시간 40분으로 안내되어 있었다.
하지만 8시 좀 넘어서 출발한 버스가 강릉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가 가까워질 쯤이었고, 난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돌아오는 표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미 서울행 버스표는 매진되어서 돌아가는 버스표가 남아있지 않았다.
이런 낭패가 있나 당황하고 있을 때, 내 눈에는 매표소 주변 사람들 사이를 조용히 이동하며 뭐라고 속삭이는 아줌마가 보였다.
“서울 가는 표 있어요 …”
난 저게 바로 암표(暗票)라는 거구나 생각하고 곧장 아줌마와 흥정을 시작했다.
“몇 시 표 있으세요?”
“다섯 시 반 하고 아홉 시만 남았어요”
이제 곧 세 시인데 다섯 시 반 표를 사자니 바다를 볼 시간이 될까 걱정스럽고, 아홉 시 표를 사자니 오늘 내에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딜레마 상황이 또 걱정되기 시작했다.
결국 서울 올라갈 때 또 여섯 시간이나 걸리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에 다섯 시 반 표를 달라고 했는데 가격이 정상가의 무려 4배 정도나 되었다.
시간에 쫓겨 서둘러 둘러본 경포대의 풍경 역시 드라마에서 보던 스산한 겨울바다의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 한눈에 보아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래사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멀찍이 혼자 떨어져 앉은 나에게는 잠시의 고독도 허용되지 않았다.
“총각~~ 커피 있어요” 보온병에 담은 커피를 팔기 위해 관광객 사이를 호객하며 다니는 아주머니들로 인해 미리 상상했던 드라마 속 배우 같은 고독하고 스산한 분위기는 경험해보지 못했고, 주변의 기념품샵에서 구입한 엽서에 친구에게 보낼 몇 마디 안부의 글을 적어 우체통에 넣은 후, 서둘러 바로 터미널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밤 12시가 좀 넘어서야 반포의 고속터미널에 되돌아온 나는 지하철도 끊기고 돈도 남아있지 않아서 역삼동의 집까지 걸어서 귀가해야 했고 겨울바다에서 고독을 씹고 오자고 계획했던 나의 로망은 힘들었던 기억으로 가득 찬 경험이 되었다.
계획과 사전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었기에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활용하게 되었고 암표를 구매하느라 돈도 더 많이 쓰게 되었으며 생각했던 고독의 경험도 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그런 결과가 계획 없이 벌인 일의 대가인가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는 당시의 기억이 마냥 안 좋은 기억으로만 남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 답지 않은 무계획적인 시도가 생각지 않던 상황을 만들었고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얻게 되는 신선한 경험을 하게 해 줌으로써 이후의 삶을 사는 동안에도 낯선 상황에 맞닥뜨리는 것을 무조건 어려워하는 기분을 줄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특히 인생을 살아오며 딱 한 번 경험해 본 암표 구입 상황은 역시 사람 사는 세상에서 '필요가 있으면 방법이 생기는구나'라는 점과 '필요가 큰 사람이 더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진리를 알게 해 줬다.
요즘도 나는 갑자기 혼자서 떠나는 여행을 하곤 한다. 사실 여행이랄 것도 없고 그냥 이웃 동네를 산책하는 것 같은 사소한 일이지만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백이진’과 ‘나희도’가 눈물로 이별한 팔달공원에도 다녀오고, “블루보틀” 커피란 걸 마셔보고 싶어서 성수동도 걸어보고 하면서 생각나는 대로의 충동적인 시도를 하고는 한다.
한때는 계획적이지 않은 상황에 놓이는 걸 어려워했던 나였지만, 살아오면서 작은 일에서라도 충동적인 니즈에 충실한 생활이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 가를 알게 되었다.
아마도 나이를 먹으면서 계획대로 생각대로 되는 일보다는 생각과 다르게 전개되는 일이 많아지고, 세상 일이란 어차피 나의 계획과 통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더욱 그렇게 된지도 모르겠다.
언제 누구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TV에 나온 누군가가 젊은이들에게 도전을 권유하면서 실패해도 세상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곳이라고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저 사람은 운이 좋았던 거겠지 그게 진짜 모두에게 통용되는 일은 아닐 거야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나이가 들고 생각하는 것 중에 가장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말처럼 젊어서 더 많은 도전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상황에 나를 맡겨보지 않은 것, 그저 성실히 사는 것 만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세상을 알지 못했던 것 그런 것을 후회하고 있다.
생각한 대로 사는 삶도 멋지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대로 사는 삶도 어떻게 보면 멋지고 가치 있지 않을까?
나처럼 무엇이든 확신이 먼저 들어야 움직이는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작은 일에서라도 충동에 스스로를 맡겨보고 그로 인해 생각지 않은 경험을 풍성하게 가져볼 수 있기를...
그런 시도들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빨리 적응할 수 있길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