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귀어진(同歸於盡)의 파멸기

by 랜덤초이


언젠가 점심 먹고 20F 사무실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는 5명이 타게 되었다.

타 부서의 리더인 W담당, 어느 부서의 누구인지 모르지만 친구 사이인 듯한 젊은 여직원이 두 명,
그리고 나랑 같은 팀의 P군, 마지막으로 나까지 이렇게 다섯 명이었다.


나와 P군은 평소 알고 지내던 W담당에게 간단히 목례를 하고 한쪽 코너에 조용히 서있었는데, W담당이 고개를 돌려 P군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아무 앞뒤 맥락 없이 찐한 경상도 사투리로 물아 본 말은


“야 니 요즘도 그런 데 다니나?” 하는 질문이었다.


“그런 데”가 “어떤 데”인지 설명은 없었지만, 노총각인 P군에게 물어보는 농조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한심하다는 복합적 어감 때문이었는지, 남자인 내가 추정한 “그런 데”는 아마도 “남성 전용 유흥시설(?)”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모르는 여직원도 둘이나 있는데 저런 질문을 받았으니, ‘P군도 참 당황스럽겠다.’라고 내가 생각하던 순간 P군은 여유로운 웃음을 지은 체, W담당에게 대답했다.


“아뇨. 담당님하고 같이 간 이후엔 한 번도 못 가봤는데요.”


P군의 대답을 들은 여직원들은 갑자기 ‘크큭..’하고 웃음을 참기 위해 애썼고,

W담당은 얼굴이 급 붉어진 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버렸다.


나는 그때 어찌 보면 무례할 수도 있는 상사의 질문에 답하는 P군의 순발력과 임기응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 친구와 적이 되면 참 힘들겠구나 생각도 들었다.

무협에 나온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초식처럼 상대와 함께 죽겠다는 파멸기(破滅技)를 쓰는 상대를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굳이 이런 글을 적어 남기는 이유는 하나다.


어차피 나로서는 저런 파멸기를 순발력으로 내뱉을 자신은 없다.

그저 “영어 숙어나 관용어구다.”라고 생각하고 달달 외웠다가 저런 상황에 활용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라도 좋다.

누구든 내게 무례한 질문을 한다면 두 배의 무례로 갚아줘야겠다.

やられたらやり返す。倍返し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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