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동료로 만나 오랫동안 알고 지낸 P군과 나는 함께 사회인 야구팀 활동도 하는 등 같은 취미생활을 하며 많이 어울려 다녔다.
오랜 솔로 생활을 하던 P군은 연회비가 수십만 원이 되는 프리미엄 신용카드를 사용했는데, 그런 카드를 이용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P군이 가입한 신용카드는 연회비가 높은 대신에 1년에 한 번 특급호텔 뷔페 2인 이용권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올해 애인 생기면 연말에 하이얏트 호텔 뷔페에 갈 거예요. 거기 야경 하고 음식이 그렇게 좋다네요"
두 살 많은 나는 P군에게 반말과 경어를 섞어 사용하는 사이였고, 아직 애인이 생길 어떤 모멘텀도 없었는데 계획만 구체적이었던 P군에게 물어봤다.
"진짜 생기겠어요? 뭐 만나려는 노력은 하고 있어?"
P군은 무슨 대책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로는 늘 자신이 넘쳤다,
"일단 계획이 있고 준비도 해야 애인이 생기죠. 만약 11월까지 애인 안 생기면 까짓 내가 뷔페 쏜다."
서로 다른 팀에서 일하게 되면서 같은 팀일 때 보다 자주 어울리지는 못했지만,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거기서 거기인지라 P군이 뭘 하고 지내는지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소식 속에서도 그의 연애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가끔 만나서 물아봐도 그에게는 여전히 기대와 희망만 가득한 상태였다.
그러던 10월 말 P군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11월 초에 시간 언제가 괜찮아요? 제가 뷔페 쏠게요."
"왜? 애인이 안 생겨서? 그럼 그냥 어머님을 모시고 다녀와요."
"이미 여쭤봤는데 그런데 불편해서 안 가시겠대요. 시간 되시죠?"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는 나라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무료 바우처의 사용 만료 시한을 앞두고 나와 P군은 둘이서 남산 하이얏트 호텔 뷔페에 가게 되었다.
미리 예약한 뷔페 이용 당일, 이용시간에 맞춰 안내된 식사 자리는 강남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통유리창 앞의 2인석이었다.
아무래도 남자가 디너 뷔페 2인을 예약하니 호텔에서는 당연히 남녀 둘이 와서 데이트를 하려는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진짜로 그쪽 창가에 배치된 2인용 좌석은 우리 자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녀 쌍쌍의 손님이 차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공짜로 얻어먹는 특급호텔의 뷔페이지만 연인석으로 보이는 자리에 남자 둘이 앉아 식사하는 건 남의 눈이 의식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 중에 서로의 호칭을 일부러 사무적으로 부르게 되었다.
"어휴 P사장님 여기 대게가 아주 좋네요."
"네 국장님 저기 양고기도 아주 좋습니다."
남이 들으면 뭔가 거래처라던가에 대한 접대의 자리겠거니 생각해줬으면 한 거였다.
아무튼 그날 다른 사람의 오해가 잠시 걱정되긴 했었지만 뷔페 음식만큼은 최고였다.
음식을 먹고 나올 때 나는 P군에게 내년에도 또 먹으러 와야겠다고 농담을 했고, P군은 역정을 냈다.
"아니 내년엔 저도 애인이랑 와야죠! 왜 악담을 하고 그러세요?"
"에이 설마 올해 안 생겼는데 더 나이 들어 생기겠어? ㅋㅋㅋ"
그로부터 꼭 1년 여가 지났을 때, P군과 나는 하이얏트 호텔 뷔페에 다시 갈 수 있었다.
여전히 애인이 생기지 않았던 P군은 이번에도 적당히 함께 갈 대타를 구하지 못하자 그래도 같이 갔었던 내게 다시 오퍼를 했던 것이다.
물론 여전히 공짜 뷔페를 마다할 이유가 없던 나는 흔쾌히 오케이 했고 이번 시즌에는 또 어떤 음식들이 나올까 사뭇 궁금해했다.
방문 당일 안내된 자리는 이번에도 통유리 창가의 2인석이었고, 여전히 우리 둘을 제외한 나머지 자리의 손님은 모두 남녀 쌍쌍 연인들이었다.
이번에는 그래도 익숙해서인지 굳이 남의 오해를 걱정하며 접대 자리처럼 격식 있게 대화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온전히 음식에 집중해서 맛있게 식사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P군과의 특급호텔 뷔페 투어는 몇 차례 더 있었다.
그가 프리미엄 카드를 두장 썼기 때문에 다른 바우처가 생긴 적도 있었고, 얻어먹는 게 미안해서 내가 가진 바우처로 스테이크 하우스를 가기도 했었다.
처음엔 그의 솔로 탈출이 실패할 때마다 '앗싸 올해도 뷔페 먹으러 가겠구나' 하고 놀리며 마냥 기뻐했는데, 점점 P군에게 자신감보다 쓸쓸함이 느껴지는 걸 보면서 쉽게 농담이 나오지 않게 되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 P군은 짝을 만나 행복한 결혼을 하여 곧 첫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
P군의 결혼으로 정기적으로 특급호텔 뷔페 음식을 먹던 전통은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 방역 제한이 완화된다고 하니 P군 아들의 돌잔치에서라도 다시 한번 호텔 뷔페에서 만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