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로 읽는 B급 사회생활
같은 부서 내의 옆 팀에 근무하는 정 차장과 전 차장은 교통체증을 피해 퇴근하기 위해 함께 저녁을 먹고 출발하기로 하였다.
"어이 전 차장 이번에 조직장 인사명령 난 거 봤어?"
"봤지. 좀 이해가 안 가던데?"
"왜? 자기두 데이터 프로젝트 팀장 하던 배 부장이 상무가 된 것 때문에 그래?"
"그래 그게 뭐야. 진짜?" 전 차장은 정말 모르겠단 표정이었다.
"그러게 뭘 잘해서 그런 건가 싶긴 하지. 사실 데이터프로젝트팀이 돈 쳐들여 시스템만 들여왔지 뭐 아직까지 성과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정 차장은 데이터 프로젝트팀과 협업부서에서 일하고 있어서 그 팀의 실질적인 성과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 게다가 원래 그 팀에서 처음에 시스템 도입 구조 설계하고, 우리 회사 데이터를 연계해 분석한 건 한 팀장님이잖아"
"그러게 어려운 건 다 한 팀장님이 하고 나서 연중에 팀장이 바뀐 건데, 한 팀장님은 또 데이터 영업팀이라고 새로 시작하는 일로 옮겼더라고. 매번 맨땅에 헤딩하는 조직으로만 도시네... 이런 게 관운이란 건가?"
"관운은 무슨... 배 부장이 사장님 친구 아들이라던데"
전 차장은 어디서 들은 소문인지 모르지만 확인되지 않은 얘기를 근거로 상황을 해석하려 들었다. 하긴 그런 이유라도 찾지 않으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인 건 사실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인사가 그렇게 돌아가나? "
"내가 보니까 일 잘하는 사람한텐 어려운 일 맡기고, 예뻐 보이는 사람한텐 성과 나오는 일을 맡기는 게 국룰이야"
"그러다 보면 정직하게 일 잘하려 하기보다 잘 보일 일만 찾지 않겠어? "
"당연하지 뭐, 난 큰 기대 안 해. 나도 그냥 적당히 시키는 것만 하려고"
전 차장은 이미 해탈한 듯한 자세를 보였다.
"그럴래도 일하다 보면 답답하고 불합리한 거 참고 지나가기 힘들지 않아?"
"내가 요즘 상황을 한자성어로 알려줄까?"
전 차장은 정 차장이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고 뭔가 가르치려 드는 것 같았다.
"오리무중(五里霧中)? 이런 건가?"
"이경행흥(易輕行興) 난중행망(難重行亡) 이야. 알아?"
"들어본 것도 같은데 무슨 뜻이더라?"
정 차장은 알 것도 같지만 사실 모르겠다는 듯 물어봤다.
"쉽고 가벼운 일을 하면 성공하고, 어렵고 중요한 일을 하면 망한단 뜻이야."
"이야 딱 우리 회사 얘기네. 근데"
"듣긴 뭘 들어봐. 내가 방금 지었는데 하하하"
전 차장은 제대로 속였다는 생각에 함박웃음으로 본인의 위트를 자랑했다.
"ㅋㅋ 대단하네 진짜 있는 얘긴 줄 알았어. 난중행망 이라니 이순신 장군님 생각이 나네 ㅋ"
"다른 한자야 그건"
"알아 그래도 그렇지 참 답답하긴 그때나 다를 게 없네.... ㅋ"
"자아 아직 길이 막힐 시간인데. 시간도 때울 겸 공정한 세상을 기원하며 내기 당구나 함 치러 가자고"
전 차장은 한 시간 정도 지나 버스전용차로 운행제한이 풀릴 때까지 당구치기를 제안했다.
"그래 한 시간짜리 죽빵이나 치자고. 쿠션은 이천 원, 가락은 천원이야"
정 차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거꾸로 된 거 아냐? 가락 치기가 더 어려운데 왜 쿠션을 이천 원으로 해?"
"당신이 이경행흥(易輕行興) 난중행망(難重行亡) 이라면서 ? 하하하"
※ 글을 쓴 이유
회사의 주니어 시절 조직장 인사발령을 보면 어차피 잘 모르는 윗사람들에 대한 발령이다 보니, 되야 할 사람이 되겠구나 안 될 사람이라서 안된거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었다. 시니어가 되고 회사 사정과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질 수록 다른 관점의 판단이 서는 경우가 많아졌다. 되게 하고 싶은 사람을 되게 하는 거구나 고생만 시키고 저 사람은 버리는구나.
누가 잘 되고 안 되는 건 그 사람의 자질과 재능에 따라 이뤄지기도 하지만 그 사람을 쓰고 있는 그 윗사람의 판단이 더욱 중요한 거구나 싶은 일들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한다. 직책과 자리에 대한 선망과 욕심으로 정직한 마음을 버리고 사는 것이 나은걸까 ? 아니면 양심을 지키며 홀대 당하더라도 버텨내는게 나은걸까 ?
언제나 정답이 있는 상황이란게 없다보니 그저 운에 맡길 수 밖에 없는 건가 싶다가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차피 각양각색 상사의 드러내지 않은 속마음을 다 알아서 행동할 눈치도 없으니 그저 내가 생각하는 바른 방법으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