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통신사가 이동전화 단말기(피쳐폰)에 대한 서비스 설치 경로를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통신사의 지위가 확고했었지만, 앱스토어를 통해 자유롭게 서비스가 유통되어 설치될 수 있는 오픈 플랫폼 시대가 도래한 다음, 모바일 서비스의 주도권은 통신사도 제조사도 아닌 3rd party 개발자들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피쳐폰에서 벨소리나 통화연결음, 고스톱과 타이쿤 류의 캐주얼 게임만 유통되던 시대는 급격히 저물고, 스마트폰에서 아이디어와 상품성이 높아진 다양한 앱과 콘텐츠가 경쟁하는 시대가 된 것이었다.
당시 회사 바깥세상의 변화가 초속 1km였다면, 회사 내부의 변화는 시속 1cm 같이 진행되어, 그야말로 엄청난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회사에서는 빠르게 변하는 시장과 고객의 니즈를 맞추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요구하고 있었지만, 생각만큼 성과를 만들어내기는 어렵기만 했다. 때문에 같은 고민을 하던 부서장과 이야기해 눈에 띄는 스타트업을 섭외하여 우리 회사의 서비스 기획자들에게 사용자를 만족시키는 서비스 기획에 대한 강연을 요청하기로 했다.
나는 마땅한 스타트업을 찾기 위해 당시 내가 써본 앱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앱의 개발사를 섭외하기로 했었다. 통신사에 다니던 터라 전화번호부 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 관심이 갔고, 유치한 듯하면서도 유쾌한 디자인과 매력이 가득한 앱 서비스는 대체 누가 만드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앱스토어에 등록된 개발자 정보로 연락을 하고, 강남구에 위치한 개발사의 사무실을 찾아갔고, 주택가와 인접한 좁은 사무실을 찾아 당시 개빌사의 바이럴 광고에 활용되던 비타민 음료 두 박스를 사들고 들어가 대표를 만나보게 되었다.
대기업 직원들과 확연히 다른 이미지의 개성 있는 직원들 속에서도 확연히 튀는 개성 있는 외모의 개발사 대표님을 만났고, 무리한 요청일 수도 있는 부탁의 말씀을 드리게 되었다.
짧은 미팅 시간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자신들의 서비스를 소개해주던 대표분께선 나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주었고, 약속된 며칠 후에 우리 회사를 방문해주었다.
한 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의 강의를 위해 대표분께선 그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기획 의도와 마케팅 시도에 대해 다양한 자료를 준비하여 정성껏 강의를 해주었고, 우리 회사의 기획자들이 많은 생각을 할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서로의 발전을 기원하며 강연을 마친 대표분을 배웅한 후, 우리 회사 조직의 부서장들과 강평할 기회가 있었다. 그분들 역시 강연을 해 준 대표분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있었지만 그 회사의 장래에 대한 예상은 나와 견해를 달리하는 분들도 있었다.
심지어 그 회사의 아이템은 우리 회사 같은 대기업이 하기에는 규모가 작아서 장래의 사업규모를 키워가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회의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후로 10년 여가 지냔 지금 그 회사의 기업가치는 대기업인 우리 회사와 어깨를 견주는 규모가 되어있고, 순수한 눈빛으로 자기 회사의 서비스를 설명하던 대표분께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계적인 기부클럽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되어 있다.
이쯤 하면 많이들 예상하겠지만, 10년 전 초빙강연을 요청했던 회사는 바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운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 대표분은 바로 김봉진 대표였다.
당시는 별다른 수익모델도 없던 작은 스타트업이 지금의 모습이 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혹자들은 시대를 잘 타고 기회를 잡은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같은 시기에 대기업에서 신규 서비스를 고민하던 나는 그들의 족적이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노력의 성공과 실패가 쌓여 만들어진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단순히 디자인, 기능과 UI가 문제가 아니라 성공과 실패를 되풀이하면서도 계속 더 나은 가치를 만들어가기 위한 조직의 노력이 없다면 지금의 모습이 될 수는 없었을 거다.
대기업의 경우 서비스 책임자가 수년씩 같은 자리에서 일할 수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공과를 판단하는 기간이 짧다 보니 단기적인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장기적으로 유지해야 할 가치를 포기하는 경우도 자주 보았다. 방향성에 대한 동의와 공감이 있다면 상황에 따라 잠시 기다리기도 하고 치고 나가기도 해야 할 텐데, 대기업에선 그저 맡게 된 사람의 임기 중에 성과를 보이기 위해 닥치고 진격이다.
배달 선전지 모아서 얼마나 사업을 키울 수 있겠느냐는 단정을 하던 사람들은 이제 회사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서비스의 내용에 초점을 두어 쉽게 판단하면, 서비스 이용자 생태계의 모습을 다 이해할 기회를 놓치는 결과로 이어지고, 핵심역량을 외주로 의존하는 대기업의 사업 방식은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없었다.
지금 만약 내가 10년 전의 나에게 돌아가 지금의 깨우침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이 세 가지는 꼭 전하고 싶다.
첫째. 신규사업은 어떤 아이템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것만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일하는 방법과 구조부터 고민하면서 일해야 한다.
둘째. 당신이 고민해서 위와 같은 방법을 안다고 해도 회사의 동의와 이해를 구하는 것은 더욱 큰 노력과 정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셋째. 그러니까 마음을 흔든 서비스와 믿음 가는 사람이 있다면 과감히 어디서 일해야 하는지를 베팅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사회의 변화는 계속되고 있고, 내가 적응할 것인지 변할 것인지의 선택은 아직도 고민스러운 선택을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