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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Aug 26. 2020

'행님'으로부터 온 십만 원

요즘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며 교직을 겸하기 위해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다.

얼마 전에는 J중학교에서 면접을 볼 일이 있었다.

분명 'J중학교 통학로 270m'이라고 표지판에 나와 있었는데, 올라가도 하염없는 오르막길은 습하고 더운 여름날 주체가 안 되는 땀방울을 주선했다.


만족스러운 수업 시연을 마치고, 20분이 넘는 5:1 면접을 무탈하게 소화했다.

꾸밈없이 소신 있게 답변했다.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느꼈다.


집에 가는 길 짧게 온 부재중 전화 한 통, J중학교의 전화라는 것을 직감했다.

버스 안이기도 했고, 전화벨이 10초도 채 울리지 않고 끊어져서 미처 받지 못했다.

'합격했구나'하는 생각에 '전화가 금방 끊어졌으니 다시 전화 걸진 말자. 합격 여부 내용을 문자로 정리해서 전달해주겠지'라고 생각하며 쓸데없는 자축을 일축했다.


하지만 그날 내내 문자는 오지 않았다.

이튿날, 조바심이 들어 먼저 문자를 보냈다.

무려 네 시간 뒤 답장이 왔다.


"선생님, J중입니다. 어제 고생 많으셨습니다. 죄송하오나 다음 기회에 좋은 인연으로 만나 뵙기 바랍니다!"

조바심이 들고부터는 탈락임을 내심 알고 있었다.

그래도 주말 간 열심히 PPT를 만들고, 내용을 달달 외운 게 생각나 아쉽고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새로운 인연과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뺏긴 기분이 들어 저녁 내내 울적해하다가 억지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니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이십 대 청춘에 패기로 퇴사하고 이주 간의 시간이 지나자 남는 것은 잉여감이었다.

코로나로 주변 친구들이 직장 일을 하소연할 때도 이제는 맞장구가 아니라 씁쓸한 웃음이 먼저 나왔다.

'잉여인간'이라는 유행어를 만든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건 영화였지. 난 실제로 잉여인간처럼 살고 있었다.


오후 한 시까지 하릴없이 여기저기 공고를 뒤적거리다가 헬스를 다녀왔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승일, 저녁에 뭐해?, 오늘 나가서 저녁 먹자. 6시까지 형이랑 여기 앞에 Y초밥집으로 와"


형은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며 집에 있겠다고 했다.

어제와 오늘 아침 울적한 내 모습을 본 건지, 아니면 식구라서 본능으로 느끼는지. 엄마는 대뜸 밥을 사주고 싶었다고 했다. 

머쓱한 마음이 들어 별일 없다고 급하게 대꾸했다. 


약속한 시간에 초밥집에서 엄마와 만났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는데, 카톡 알림이 울린다.

'행님'(형)에게 온 메시지였다.

일주일 전 끊어진 문자 뒤로, 십만 원을 보내왔다는 메시지. 뜬금없지만 돈이니까 우선 좋았다.

"용돈", 짤막한 두 음절의 메시지 뒤에는 무언의 응원의 들어 있었다.


핸드폰을 빤히 들여다보는 나를 보고, 엄마는 다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누군데?" 하며 물어왔다.

"형인데, 갑자기 용돈을 주네. 보통 안 그러는데 뭐지"하며 답했다.


엄마가 사주는 저녁을 먹고 집에 오는 길.

편의점에 들렀다가 집 앞 공원에서 대뜸 물었다.

"엄마, 엄마는 내가 취직하는 게 좋아, 아니면 공부하는 게 좋아?"


엄마는 별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박자를 끊으며 답해왔다.

"너 또 그런다. 너 하고 싶은 거 해. 하고 싶은 공부 하면서 좋은 자리 있으면 가보는 거지 뭘"

근처 가던 길고양이가 먼저 듣고 펄썩 바위 위로 뛴다.


집에 오니 형은 헬스에 가고 없다.

엄마는 피곤하다며 안방으로 직행한다.

어제 내 방에서 줄 세웠던 맥주캔을 치우며 모종의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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