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일 Sep 03. 2020

위로의 방법

대학교에 다닐 때 친하게 지내던 후배 L에게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나보다 한 학번 늦게 들어온 L.


그때는 아이팟 터치라는 MP3가 존재할 때였는데,

내 아이팟 터치가 고장 나 노래 듣기가 난감할 때,

선뜻 자기 아이팟 터치를 빌려주고, 또 1년 넘게 돌려주지 않아도,

그리고 고장이 난 채로 돌려주어도, 나에게 웃기만 할 뿐 아무런 꾸중도 하지 않던

마음씨 좋은 후배였다.


둘 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3년이 넘게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

나는 군에서 장교로 근무하며 매일같이 야근에 시달렸고,

L은 졸업 후 임용고사를 준비한다는 애기를 흘러 흘러 듣곤 했다.


그러다 며칠 전 다짜고짜 잡채의 레시피를 물어오는 연락이 왔다.

아마 내가 썼던 글을 보고 안부를 전한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안부를 묻자 하니 지금도 임용고사를 준비하고 있는 듯했고,

그리고 어느 정도 교사를 꿈꾸는 갈망이 사그라든 듯했다.

소식을 읽어 내려가며 '그래, 너무 지쳐 힘든 나머지 꿈도 뭣도 내려놨구나', 아니면 '정말 맞지 않았겠지' 하는 생각이 교차했다.

갑자기 토로하는 L의 하소연에 어떤 답이 가장 위로가 될까 고민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장동민이 유재석에게 받았던 위로'에 대한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장동민은 죽음도 불사할 정도의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었고,

당시 일면식도 없던 유재석에게 다짜고짜 찾아갔다고 했다.


한참을 쏟아내는데,

유재석은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고 가만히 얘기를 들어줬고,

얘기를 마치고 택시에 타는 장동민에게 지갑에 있는 돈을 모두 꺼내 주며

'남은 돈은 어머니 용돈 드려라'하며 격려해 주었다고 한다.

ⓒ JTBC, 속사정쌀롱

그리고 그때로부터 장동민은 우울을 씻고 본업에 충실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갑에 있던 돈이 위로의 전부가 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들어주는 것,

'그래 그럴 수 있다'라고 무언의 응원을 보내는 것.

그것이 장동민을 구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 딴에는 성의를 보인다고 주절댔던 답변이

L의 입장에서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던 듯하다.

한참을 써 내려간 답장에는 읽었다는 표시만 되어있을 뿐,

아무런 답이 없었다.


위로의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본다.

위로에는 왕도가 없을 것이다.

위로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직접 만나 조언하는 위로 vs 

직접 만나 들어주는 위로 vs

만나지 않고 조언하는 위로 vs

만나지 않고 들어 주는 위로 vs

멀리서 응원하는 위로 vs

ETC.


난 그중에 몇 번을 택했어야 했나.

박완서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읽다 보면

상대방은 내가 위로하는 줄도 모르는데,

나 혼자 보내는 위로가 주변 사람에게 괜시리 감동을 줄 때도 있다. 


그래, 그럼 위로는 한 발짝 물러나서 곁에 서주는 것이 왕도인 것일까.

여전히 묵묵부답인 메시지 창만 가끔 드나들며 어리숙한 내 마음만 돌이켜보곤 한다.




ⓒ 사진, 500일의 썸머

작가의 이전글 엄마를 도와 만든 잡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