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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Sep 11. 2020

맛도 기분도, 소고기 샐러드

소고기 샐러드 도전기

며칠 사이 바쁜 일이 있어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허기만 때웠더니,

얼굴도 푸석해지고 몸도 가볍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디서 건강식을 배달해 먹는 것도 영 내키지 않아서 직접 소고기 샐러드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 본 요리라고는 라면, 달걀프라이, 캠핑 갔을 때 해본 바지락술찜, 버터갈릭새우, 지난번에 엄마를 도와 만든 잡채가 전부였다.

라면과 달걀프라이를 빼고 주변 도움 없이 할 줄 아는 건강식다운 음식은 없었다.


뭐 대단한 거 있을까. 일단 마트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소고기 샐러드 만드는 법을 검색하니 가지각색 요리법이 나온다.

양상추만 곁들여 먹기엔 샐러드라는 이름이 무색해질까 봐 적양배추와 파프리카, 치커리를 섞어 색도 맛도 일품인 소고기 샐러드를 완성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니, 채소값이 왜 이리 비싼지.

또 나 혼자 먹을 건데 이렇게 많은 채소도 필요 없었다.

마트를 서성이는데 신선 코너에 1인분에 적합한 채 썬 채소들이 있었다. 냉큼 집었다.

그리고 먹기 좋게 썬 토시살과 귀여운 양송이버섯도 장바구니에 담아 나왔다.


늘 배달 음식을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기 일쑤였는데 오늘 일을 낸다고 생각하니 괜시리 마음이 들떴다.

진정 떠나와야 하는 것은 나의 마을도 아니요, 재산도 아니요, 늘 반복하는 용서할 수 없는 습관이라는 어느 시인의 시구가 떠오른다.


산뜻하게 시작하기 위해 설거지와 주방 정리를 마쳤다.

먼저 토시살과 양송이, 채소를 그릇에 예쁘게 담았다.

토시살과 양송이 삼 형제


토시살은 힘줄이 있고 향이 강해서 손질을 해야 한다고 봤다.

그래, 우거진 놈들은 매운맛을 봐야 부드러워지는 법이지. 힘줄에 가볍게 칼집을 내줬다.


돼지고기야 아무렇게나 구워도 바싹 익히면 그만인데, 소고기는 굽는 법이 왜 이리 요란스러운지.

비싼 값을 한다고 생각하니 가끔은 재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나도 똑같이 소고기를 손질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반골 기질로 사는 것도 내 마음에 유해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먹기 좋게 썬 양상추, 적양배추, 적근대, 치커리, 파프리카


채소를 담아놓고 잠시 생각에 빠진다.

다량으로 팔던 채소가 이젠 점점 소량으로 판매되고, 이젠 아예 1인 샐러드용으로 썰어 나오는 것을 보며 모든 것이 완벽히 분업된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업혁명의 논리가 유령이 되어 바리케이드를 떠도는 것은 보았어도, 이렇게 개인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줄 몰랐다. 

에잇, 요리하다 말고 무슨 생각을. 버섯도 마저 손봐야지.


양송이버섯도 손질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지난 캠핑 때 버섯을 씻어 온다는 친한 형의 말이 떠올랐다.

그때 형들끼리 버섯을 씻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로 한참 토론한 기억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났다.

난 씻지 않고 겉껍질만 벗겨내기로 했다. 

어설픈 칼질로 하니 쉽지 않다.

양송이 껍질을 벗겨내니 깨끗이 샤워를 한 것처럼 깔끔하니 보기 좋다. 오른쪽 사진은 비교샷.


손질한 양송이버섯은 샐러드에 올라가야 하니, 썰어서 굽기로 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스스로 생각하다니, 음식 머리가 있는 것 아닐까!

자화자찬하며 재료를 손질하다 보니 어느새 몰입하는 내가 대견하다는 생각도 든다.

굽기 전 썰어 손질한 양송이버섯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토시살과 버섯을 구워 샐러드에 올리기만 하면 끝이다.

어려워 보였는데 막상 하니 별 것 없었다. 매사도 이러면 좋으련만. 

채소와 버섯을 손질한 정도로 자기 효능감을 찾으려 하니 내가 올 데까지 왔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아무렴 어때.


이제 토시살과 버섯을 구울 차례다.

팬을 달구고 오일을 살짝 두른 뒤 토시살을 올렸다. 중간 불에서 너무 익지 않게 주의했다.

그 위로는 스테이크 솔트를 갈아 뿌렸다.

많아 보이지만 부족했다.


기름인지 수분인지, 팬이 넘칠 정도로 흘러 당황했지만 잘 익힌 후 팬을 닦았다.

고기 향이 은은하게 남아있는 팬에 다시 오일을 두르고 썬 버섯을 올렸다.

떠나간 자리에 좋은 향기를 남기는 것은 사람이나 사물이나 필수 과제다.


이젠 버섯을 구울 차례다.

버섯을 먹자고 생각하니 벌써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아 신이 났다.

후추를 뿌려 좋은 풍미를 더했다.

참 좋은 버섯


휴, 별 것 안 한 것 같은데 시간이 왜 이리 흐르는지.

잘 익힌 고기와 버섯을 샐러드에 올렸다.

참, 고기와 버섯을 올리기 전에 샐러드에는 흑임자&참깨 드레싱을 뿌렸다.

드레싱까지 만들 수는 없어 시중에 있는 샐러드 소스를 뿌렸다. 

효율성을 담보한 산업혁명의 실현을 다시 똑똑히 확인한다.


그럴듯한 소고기 샐러드. 참깨 드레싱이 한 수였다.


드디어 완성된 소고기 샐러드!

예쁘게 담아야 먹기도 좋을 것 같았는데, 잘 담아놓고 보니 꽤 그럴듯하다.

누군가에겐 요리 축에도 못 끼는 유세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내 기분 하나는 최고다. 

내 몸을 위해 성취한 작은 도전. 가끔 산업혁명의 그늘을 보곤 하지만 이럴 땐 기업과 공장에게 고맙다.

그 양면성이 돼지고기 구울 때와 소고기 구울 때의 마음에 버금간다.


아무렴 어때. 맛있으면 그만. 그렇게들 살아가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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