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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Nov 24. 2020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일어나는 일

'아무렇게나'와 '아무것도'는 다르다.

'아무렇게나'가 까무러치기라면, '아무것도'는 의미 찾기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표현 방식이 있다.

글, 그림, 음악, 사진, 영상, 건축, 사람 자체.


얼마 전까지 소위 뺄셈의 미학이라는 주제가 흥행했었다.

이 시대의 조급과 과잉을 진단하고, 자기만의 페이스 찾기 운동과 내려놓기 운동을 처방했다.

글쎄, 뺄셈의 미학도 경쟁 사회를 피해 갈 수는 없었던 걸까.

결국 그 주제도 처방약의 과다 복용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비록 뺄셈의 미학은 사망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기'의 유령은 지금도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가 살아가는 방식이 될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어떤 감상이 가능할까?




1. 음악: 4분 33초


연주곡 한 곡을 소개하려고 한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다.

https://youtu.be/JTEFKFiXSx4

존 케이지의 "4분 33초", 연주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4분 33초"는 미국의 음악가 존 케이지가 작곡한 잘 알려진 연주곡이다.

연주하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 것이 포인트다.

건반을 열고 닫는 소리, 관객의 발소리, 웅성웅성 대는 소리가 빈 악보를 채운다.


ⓒ 존 케이지, "4분 33초"의 악보


존 케이지가 무향실에 갔을 때의 얘기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 기대한 무향실에서도 '무음'은 없었다.


그는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후에 그것이 신경계의 소리와 혈액 순환의 소리라는 것을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은 없다.

그가 내린 결론이 "4분 33초"가 됐다.




2. 그림: 백색 회화(White Painting)


이번엔,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캔버스를 보자.


ⓒ 로버트 라우센버그, 백색 회화(White Painting), SFMOMA


1960년대 발표한 '백색 회화(White Painting)'이라는 작품이다.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다.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존 케이지의 친구였는데,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연주홀 안의 소리가 음악을 이루는 것을 보고,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회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실제로 캔버스는 매일 똑같지 않았다.

어느 날은 전시관의 조명이 더 밝았고, 어느 날은 어두웠다.

어느 날은 관객이 많아서 그림자가 생겼고, 어느 날은 아무도 없어서 선명했다.

멀리서 볼 때의 명암과 가까이서 볼 때의 명암 또한 달랐다.


빈 캔버스 위로 여러 가지 상황이 그림을 대신했다.


ⓒ 알렌 그란트, 백색 회화 앞에 있는 로버트 라우센버그, 뉴욕




3. 영화: 영화를 위한 선


음악에, 그림까지.

이 마당에 영화가 빠지면 섭하다.


우리나라 현대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백남준의 '영화를 위한 선'이다.

이쯤 되면 눈치가 대답할 것이다.


'영화를 위한 선'은 사실 영화라기보다는 영상에 가깝다.

필름이지만, 아무것도 프로젝션하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아무 영상도 없다.


백남준, '영화를 위한 선'


백남준이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백색 회화'를 보고 이 작품을 구상했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로버트 라우센버그에 영향을 준 존 케이지가 이 작품을 보고 '백색 회화'가 떠오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Nothing'이 낳은 'Something'이다.

이제 아무것도는 더이상 아무것도가 아닌 것이다.




4. 광고: Christmas Break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광고다.


크리스마스는 시즌의 광고계는 일대 아수라장을 방불케 한다.

대목이 그 첫째 이유고, 마케팅이 그 둘째 이유다.


그러나 이 중대한 시기에 킷캣은 이런 광고를 내놨다.

제목은 "Christmas Break"이다.


https://youtu.be/YBy8wkHJsPI

ⓒ KitKat, KitKat: Christmas break


광고 초기에는 방송사로 신고 전화가 여러 번 들어왔다고 한다.

방송 사고라며 말이다.


이 광고는 30초 동안 영상이 없다. 내레이션만 있을 뿐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Nothing)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크리스마스, 식탁에 모인 가족들에게 그 누구도 선물을 보여주거나 사라고 하지 않는다고 상상해봅시다.


매일 재생되는 감상적인 노래나 우스운 산타모자를 쓴 사람들도 없습니다.

없습니다. 진짜 없어요. 징글벨, 눈꽃송이, 유명인이 파는 냉동 칠면조도 없죠.


이런 것도 가끔 괜찮지 않나요?"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상품에 있는가?

광고를 빙자했지만, 과잉 공급 사회에 던진 '아무것도'다.


존 케이지, 로버트 라우센버그, 백남준이 그러했듯, 텅 빈 공간에서의 의미 찾기다.


물론, 이것도 마케팅의 일환이지만 말이다.




5. 건축: 김옥길 기념관


이번엔 좀 다른 방식의 아무것도 하지 않기다.

건축가 김인철이 설계한 '김옥길 기념관'이다.


ⓒ 박영채 건축사진 블로그, 김옥길 기념관
ⓒ 박영채 건축사진 블로그, 김옥길 기념관


아뿔싸, 이건 형체가 있다.

아무것도 없지 않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하지 않기 시리즈인지.


한 장 더 보자.


ⓒ 조선일보, 허영주, 김옥길 기념관 내부


그렇다.

김옥길 기념관 내부에는 '김옥길'이 없다.


김옥길은 전 이대 총장을 지낸 인물로 교육가로도 유명하다.

김옥길 사망 후 그녀의 동생 김동길이 그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관이다.


그러나, 기념관에 그 흔한 흉상, 아니 사진 한 장이라도 없다.

지하는 교회, 지상은 카페다.


주체가 없는 기념관이다.

드나드는 사람이 기념관을 채울 뿐이다.


김옥길 기념관의 텅 빈 의미는 사람들이 채우고 있다.




멀리도 돌아왔다.

지금까지 '아무렇게나'가 아닌 '아무것도'가 가지는 위상에 대해 겉핥기를 해봤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가 가지는 공통분모는 사실 잉여감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 존재하기다.

다시 말하면, 적극적인 의미 찾기다.

그래, 쉽게 말하면 멍 때리(면서 생각했다가 안 했다가 하)기다.


ⓒ SBS,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의미가 생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 괴롭지 말자.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거창한 의미 부여는 아니다.

자기 자리에서 멍 때린다면 충분하다.

멍 때리는 순간 의미는 시작된다.


텅 빈 공간의 감상은 펼치기 나름이다.


그래, 멍 때리는 순간 우리를 움직이는 생각이 찾아온다.


또 아무것도 이룰 수 없던 날, 우울해하지도 말자.

사실 지금도 우리는 이뤄지고 있다.


거창한 동기 부여도 아니다.

지금 살아가는 것에 충분하다.

살아가는 순간 의미가 시작된다.


텅 빈 하루의 의미는 채우기 나름이다.


그래, 멍 때리며 살아가자.




ⓒ 메인 커버, SBS, "뇌도 휴식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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