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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Nov 15. 2020

편백나무 밑에 쌓인 가지

누구나 그렇듯, 어릴 때부터 잘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지금도 많다.

수학, 영어, 게임, 축구, 악기 연주, 인간관계, 그 밖에 셀 수 없는 세상살이 지식과 지혜들.


아쉽게도 모든 것을 다 가져갈 수는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게임하는 시간보다 수학을 푸는 시간이 길어졌고,

축구로 사람을 만나기보다 책상을 두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아졌다.

그게 세상살이 문법이라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며칠 전엔 무심한 발걸음으로 뒷산에 올랐다.

편백나무와 팥배나무를 계획적으로 심어 조성한 산답게 어린 나무와 큰 나무가 함께였다.


산에 어울리지 않게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해 주변을 둘러보니

나무의 가지를 잘라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전지 작업이라고도 불리는 가지치기 현장은 알 수 없이 잔인해 보이기도 했고,

앙상한 뼈만 남은 나무가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가지치기를 한 편백나무


산에 동행한 선생님이 한 마디를 거든다.

"나무로 곧게,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지치기 작업이 필수랍니다.

사람도 마찬가지겠죠. 더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그래, 잘 성장하기 위해서 모든 일에 에너지를 쏟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꼭 입시와 취업, 돈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살기 위해서 때로는 큰 가지도, 곁가지도 잘라내는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생각해보니 평소에 길을 가면서 가로수 가지치기 현장을 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별생각 없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가지치기를 하고 꾸준히 관리를 했기에 비로소 손색없는 가로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지를 친 어린 나무 근처로 큰 나무들이 곧게 뻗어있다.


다만 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자르진 않는다.

첫째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서고, 둘째 정신없는 게 보기 싫은 사람 손이 닿아서다.

나무는 누가 잘라주는데, 우리는 누가 잘라주나, 변명만 앞세우는 사람은

의지와 운동 능력을 가졌는데 남 탓만 하기도,

정신없는 세상에 살면서 자기를 방치하기도 무안할 것이다.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나무도 사람도 가지치기 없이 곧장 뻗을 줄 알았다.

그래, 원하는 방향으로 곧게 뻗기 위해서 가지치기는 꼭 필요한 과정이구나.

잘라내고, 내려놔도 또 자라나는 게 가지구나.


편백나무 밑에 쌓인 가지들이 유난히 수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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