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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Jan 19. 2021

면접 준비 카톡방 생태계


자신을 소개해보세요.


꿈이 뭐예요?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가 뭐예요?


 5년 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학점 대신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요?




망망대해를 건너 스페인을 나흘 째 여행하던 중, 저녁을 먹고 론다의 누에보 다리를 지나며 생각하는 고상한 자기반성이 아니다.


바로 현대판 바늘구멍, 취업 관문 중 하나다.


일생을 두고 고민해도 모자랄 질문에 즉문즉설을 설파해야 하는 것이 취준생의 경지다. 30년 경력 수도승도 울고 간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면접을 다룬 에피소드를 보며 웃기도 했지만, 슬프기도 했다. 웃었던 건 '왜 저래'하는 생각에, 슬펐던 건 '나도 저럴까'하는 생각에.


비록 실제상황은 아니지만 애간장을 태우며 답변하는 조세호가 안쓰러웠다. 나 같아서. 또 내 친구들 같아서. 옆에서 웃기다고 웃는 유재석은 얼마나 얄밉던지.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과 소신이 기본이지만, 수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오픈 카톡방에서 기업별, 직군별로 수많은 면접 준비방을 만날 수 있는데, 혼란하기 그지없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에 '상생'을 적었을 법도 한 '동기'들은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퍼트려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잘못된 정보는 실시간으로 다른 '동기'들에 의해 수정된다. 그리고 몇 명은 카톡방에서 퇴장당한다.


무시에 깔보기도 빠질 수 없다. "혹시 2차 면접 전형에서 영어 면접은 몇 분 진행한다고 했던가요?", 안내했던 내용이지만 누군가는 까먹을 수 있다. 곧 돌아오는 답변은 "이 정도 기억력으로 면접 준비는 어떻게 하시려고", "이러니 SKY 밑으로는 거르지". 할 말이 없다.


그래, 이 글은 고발이다. '동기'들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면접 준비 생태계에 대한 고발이다. 가끔은 일론 머스크의 뉴럴 링크 사업이 빨리 상용화됐으면 한다. 같은 말을 외워서 반복해야 하는 앵무새보단 로봇 신세가 나을 것이다.




인사팀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돌이켜보면 사실 면접관도 별 수 없다. 면접이 끝나고 평가지를 보면 도대체 뭘 봤나 싶다. 상세한 피드백에 직무와 인성을 고루 보는 면접관도 있지만, "다소 공격적", "머리 염색" 등 성의 없는 피드백도 왕왕 있는 일이다. 도시괴담이 실제 사건으로 밝혀지는 순간이다.


ⓒ 이기상 사회탐구 강의, 이기상 강사의 유머에는 가끔 뼈가 섞여있다. 그래서 공감을 사고, 그래서 웃음이 있다.




여러 날을 거쳐 면접을 보는 경우에 부정과 부패는 가중된다. 먼저 면접을 보고 온 선발대를 모시기 위한 경쟁을 그야말로 치열하다. "00님 개인톡 가능할까요!", "기프티콘 드릴 테니 질문 내용 하나만 알려주세요", 출세를 위해서 무엇을 못하랴. 미처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하룻강아지들만 쓰린 속을 삼킨다. "저기요 공정하게 하셔야죠"


그러나 첨예한 각축전에도 온정이 있으니 억하심정을 쏟아내는 의견들 뒤에는 화해가 따른다. "제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는데,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곧 "아닙니다… 저도 예민해서 맞는 말씀인데 괜히 딴지를 걸었네요". 두 사람의 심정이 이해 안 되는 바 아니다. 곧 숨어있던 사람들도 나와 서로 응원한다.


부득불 경쟁하게 된 처지에, 연대는 사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사회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결과가 나오면 곧 사라질 미련한 감정일까. 그래도 같은 결과라면 시기보단 연대가 나을 것이다.




돌고 돌아 다시 면접이다.

정신 차려보면 어디는 서류 통과, 어디는 1차 면접, 어디는 최종 면접.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그러나 면접을 준비할수록 드는 생각.


ⓒ 미국유머_인스타그램, 친구가 보내준 내 인생 다이어그램, '나 아니다, 나 아니다, 나 아니다' 자기 최면 삼창을 하지 않으면 곧 욕지기가 치민다.


면접관도, 취준생도, 취준생이 모인 카톡방도 뭐가 뭔지 정확히 모르는 면접 생태계.


그래서 사람 마음 들었다 놨다 하는 가짜 전문가들만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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