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님의 퇴사
좋은 일과 나쁜 일은 같이 온다. 내 신조다. 원래는 나쁜 일이 계속 몰려들 때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족쇄처럼 내 발목을 잡았다. 유난히 내게 좋은 일이 많았던 2025년 한 해. 얼떨떨한 기쁨을 누리면서도 나는 마음 한편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나도 되나? 이게 맞는 거야?
올해 나는 예기치 못한 조기 승진을 했다. 물론 열심히 일한 건 맞았지만, 나이나 경력이 아직 승진할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승진이 됐다. 실장님께서 많이 힘써주셨다고 들었다. 정말 너무 놀랐고 감사했다.
대리에서 과장이 되고 나서 이제 좀 마음을 비우고 회사를 다녀야겠다는 당초의 계획은 지킬 수 없었다. 과장의 무게를 제대로 실감하기도 전, 또 다른 책임이 내게 주어졌다. 회사를 대표해서 미국 연수를 가게 된 것이었다. 이 또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회였다.
승진과 연수, 모두 그에 따르는 책임과 부담감도 있겠지만 어쨌든 커리어적으로는 매우 잘 된 일 아닌가. 작년에 회사 일에 너무 일희일비하며 몰입하느라 스트레스 관리를 못한 것 같아서 올해는 회사와 나를 좀 분리시켜야지 했는데 기쁘게도(?) 내 다짐은 모두 박살 났다.
해외 연수 담당자로 지정되고 나서, 연수 준비를 하느라 약 한 달간을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다. 실장님은 그런 나를 배려해서 업무 조정도 많이 해주셨고, 나는 그 때문에 최근엔 실장님보다는 해외 연수를 같이 가는 본부장님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어느덧 바쁜 것들이 얼추 마무리되고, 미뤄뒀던 일을 다시 갖고 와서 처리하려고 했다. 며칠 전 실장님께 그와 관련해서 문의를 드렸는데 반응이 평소 같지 않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며칠 사이 실장님은 본부장님과 아주 긴 면담을 여러 차례 가졌다.
왜 안 좋은 예감은 늘 맞을까. 최근 며칠간 있었던 일의 단서들로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절대 아니길 바랐다. 정말 헛짚은 것이길. 너무 틀린 추측이라 나중에 하하 웃고 넘기는 해프닝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실장님이 오랜만에 팀 점심 회식을 하자고 말씀하면서부터 점점 불안은 현실이 됐다. 그리고 결국은 실장님 입에서 그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실장님을 원망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실장님께 서운한 것도 아닌데 눈물이 막 계속 났다. 그냥 정말 너무 아쉬웠다. 실장님 같으신 분을 다시 만나기기 얼마나 어려운 지 알고 있었다. 단언컨대 그녀는 내가 만나본 상사 중에 가장 최고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그래도 실장님이 지금 회사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더 좋은 기회 때문에 가신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다만 실장님 없이 헤쳐나가야 할 우리 팀의 앞날이 매우 암담했다. 그 말을 듣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내내 팀원들은 하나같이 말이 없고 씁쓸한 미소만 지었다.
정말 좋은 일과 나쁜 일은 같이 오는 게 맞는 거였나 보다. 애석하게도. 슬플 때도 너무 슬퍼서 절망하지 말고, 기쁠 때도 너무 기뻐서 자만하지 말라는 신의 뜻이려니 하지만… 그래도 이번 한 번쯤은 예외로 해주지. 운명이라는 게 참 얄궂다.
내가 올해 기쁜 일의 총량을 벌써 다 써버려서 그런 건가? 아내가 죽던 날 이상하리만큼 운이 좋았던 김첨지가 생각난다. 정말 2025년은 유난히 운 좋은 일이 많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