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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에 특별한 의미를 담아서

복주환, '생각 정리 스피치'

by 그럼에도

p. 141

[ 2016년 4월 5일 jtbc 뉴스룸 中 앵커 브리핑 ]


바다 건너 제주에서 강원도 산골까지 전국이 흩날리는 벚꽃으로 물들었습니다.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 '벚꽃 앓이'에 '벚꽃엔딩'이란 이 곡은 벌써 4년째 차트를 역주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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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항상 일어나는 논란은 바로 일재 잔재 이야기입니다. 벚나무는 일제가 1907년 창경궁에 처음 심었고, 1924년부터 이곳에서 '야앵(夜櫻)' 밤 벚꽃놀이가 열리기 시작했죠. 해방 이후 벚나무는 국적 논란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1980년대 초, 당시 창경원에 심어졌던 벚꽃 2,000여 그루는 궁을 복원하며 모두 뽑혔습니다. 진해 벚나무들도 한때 일제의 잔재라며 잘려나가다 잘려나가다 원산지가 제주 왕벚나무라는 'DNA'검증 끝에 어렵사리 살아남았습니다. 윤중로 벚꽃축제도 어느 사이 여의도 봄꽃 축제로 이름을 슬쩍 바꿨더군요.


기실 벚꽃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원죄는 광복 70년이 넘도록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한일 양국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한일 양국이 '12.28위안부 합의'를 이끌어낸지 딱 100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여전히 "강제연행은 없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일본 고교 역사 교과서들은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그때마다 불가역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합의정신' 이행만 강조하는 우리 정부에 사람들은 야속해했습니다. 그리고 좀 박하게 말하면 그런 우리 정부가 유일하다시피 하게 내놓은 단호한 조치는 소녀상 지킴이로 나섰던 대학생을 미신고 집회로 개최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것뿐입니다.


벚꽃의 일본명은 '사쿠라'입니다. 우리나라에선 다른 속셈을 가지고 어떤 집단에 속한 사람을 사쿠라라 칭하기도 하죠. 그런데 사실 그 말의 유래를 따져보면 벚꽃 자체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는 '사쿠라니쿠', 즉 벚꽃 색깔을 한 연분홍빛 말고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쇠고기인 줄 알고 샀더니 말고기더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온 사방에 벚꽃 잎은 날리고 봄은 아름다운데 오늘로 100일을 맞은 위안부 합의와 검찰로 송치된 젊은이를 보니 쇠고기인 줄 알았던 말고기, 즉 사쿠라니쿠가 떠올랐다는 오늘의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은 봐도 뉴스는 잘 보지 않았다. jtbc의 뉴스를 갑자기 보게 된 이유는 뉴스를 보기 위해서가 아닌 '앵커 브리핑'을 보기 위해서, 만나기 위해서였다.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앵커 브리핑을 발견했고, 드라마처럼 기다리는 순간이 되었다.


일상의 평범한 소재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사이에 고속도로를 연결하듯 매끄럽게, 그렇게 질주하는 스피드가 느껴지던 시간!


일상의 소재를 듣다가 평범하지 않은 말을 듣게 되고, 먹먹해진다. 그렇게 생긴 여운은 내가 잊고 지내고 있는 당연한(?) 사실과 순간들을 알려줬다.


잊지 말이야 할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을 그렇게 당연하게 잊고, 생각 없이 살아가곤 한다.


가끔은 이런 보물 같은 순간들이 그렇게 일상에 졸고 있는 나를 깨워주었다. 손석희 앵커의 감정이 절제된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듣고 싶은 "오늘의 앵커 브리핑을 시작합니다."


책 속에서 만난 반가운 앵커 브리핑 멘트에 저자의 말보다 더 깊이 빠져든,
나의 삼천포! 사쿠라니쿠, 앵커 브리핑 시간이었습니다.




사진 https://www.youtube.com/watch?v=hWvZjfYXq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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