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기) 과수원 노동 vs 플랫폼 노동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2'

by 그럼에도

p. 118


일자리가 하나 생기면 열 명이 그 자리를 잡으려고 싸웠다. 낮은 품삯을 무기로 싸웠다. 저 사람이 30센트를 받는다면, 나는 25센트를 받겠다는 식이었다.

저 사람이 25센트를 받는다면 난 20센트만 받겠소.

아냐, 나는 지금 배고파 죽겠어. 그러니 15센트만 받겠소. 나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아이들을 위해 일을 할 거요. 당신도 우리 애들을 한번 봐야 해요. 몸에는 부스럼이 생기고, 제대로 뛰어놀지도 못해요. 바람에 떨어진 과일이라도 하나 쥐어 주면, 아주 우쭐해져서 난리지. 난 고기 한 점이라도 사기 위해 일을 할 거요.


이건 좋은 일이었다. 품삯은 내려가고, 물가는 계속 높았으니까. 대지주들은 기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고 더 많은 전단지를 뿌렸다.


그래서 품삯은 내려가고 물가는 계속 높았다. 오래지 않아 우린 다시 농노들을 거느리게 될 거야.


대지주들과 기업들은 또 다른 방법을 고안해 냈다. 대지주가 통조림 공장을 사는 것이다. 복숭아와 배가 익으면 지주는 과일 값을 키우는 값보다 싸게 후려쳤다. 통조림 공장 사장 자격으로 과일을 싼 값에 사들인 다음 통조림 가격을 높게 유지해 이윤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통조림 공장을 소유하지 못한 소규모 농부들은 농장을 잃어버렸고, 그 작은 농장들은 대지주와 은행과 역시 통조림 공장을 소유한 기업들 차지가 되었다.


+ (중략)


기업들, 은행들도 스스로 파멸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몰랐다. 농사는 잘되었지만 굶주린 사람들은 도로로 나섰다. 곡식 창고는 가득 차 있어도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구루병에 걸렸고 펠라그리병 때문에 옆구리에서는 종기가 솟아올랐다.

대기업들은 굶주림과 분노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들은 어쩌면 품삯으로 지불할 수도 있었을 돈을 독가스와 총을 사들이는 데, 공작원과 첩자를 고용하는데,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사람들을 훈련하는 데 썼다. 고속도로에서 사람들은 개미처럼 움직이며 일자리와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분노의 포도는 수채화처럼,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세계 대공황이라는 주제로 상영되는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어떤 강렬한 한 컷이 아닌 여러 장의 평범한, 일상의 한 장의 사진처럼,


옳고 그름이라는 어떤 주장도 없이 가장 사실적인 모습을 오롯이 보여 준다.


이 톱니바퀴의 원인도 결과도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협력을 분열시키고, 의심하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 '우리'라는 이름으로 노조를 만들어서도 안되며, '우리'를 만드는 사람은 '빨갱이'라는 단어로 찍혀서, 추적과 범죄자 신세를 피할 수 없었다.


조드 일가의 정신적 지주이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p.410

여자들이 보는 인생은 그래요. 우린 그냥 죽어서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계속 살아간다고요. 조금 변하기야 하겠지만, 삶은 계속되는 거예요.

1930년대 태어난 이 책과 2020년 현재를 비교할 수 있을까?


1930년 전단지를 뿌렸던 그때의 노동력 확보 방법은 2020년 현재 매스컴 광고로 대체되었다. '캘리포니아에는 일자리가 넘쳐요~'라는 말 대신 21세기한국 사회는 '플랫폼 시장에는 배달, 배송 일자리가 넘쳐요~'라고 묘하게 닮아 있다.

최근 광고에는 '몇 시간만 일해도 된다, 생활비가 부족하면 배송 일자리로 더 벌면 된다'는 식의 광고가 TV, 유튜브 광고 등으로 여기저기에서 만날 수 있다. 코로나 시대, 비대면 시대에 배달과 배송이 많아졌다고 한다. 정말 노동력이 부족해서 지속적으로 광고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야 배송 단가가 내려가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미국과 한국, 국적과 시대가 다름에도 신기할 만큼 닮아 있었다. 자본주의라는 DNA의 속성이 닮은 것일까? 과거 오래전 사진 속에 현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15살 이 소설에 빠졌던 기억에 휴가 중에 다시 읽어 보았다. 고전은 읽을 때마다 다른 생각과 사실을 일깨우기에 오랜 시간이 흘러도 독자의 마음속에 커다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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