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다가오는 말들'
p. 61
"지금까지 제 글이 이상하고 못났던 것은 배움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어요. 필사를 하지 않아서, 단어를 많이 몰라서, 독서량이 부족해서, 그게 아니더라고요. 나를 생각하지 않아서였어요.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고독과 외로움이 괴로워서. 그럴 때 늘 찾았던 친구들, 드라마, 영화, 책이 문제였어요.
나 자신과 생각보다 서먹한 사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귀한 깨우침이 담긴 고백이다. 나는 수업과 강연을 진행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 아니 자기-삶을 진득하게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는 걸 자주 느낀다. 그래 본 적이 없어서인 것 같다. 한국에서 입시제도 위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에서 글쓰기란 남에게 평가받는 일이다. 출제자 의도에 부합하는 표준화된 '답'을 찾아보니 자기로부터 멀어지고 남의 사고에 집중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게 된다.
은유 작가의 글쓰기 수업에 등장하는 20대 여성의 손편지 고백이다. 내가 쓴 글이 아닐까? 타인의 고백에서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사춘기 때에도 글 쓰는 건 끔찍이도 싫어했다. 표현은 말로도, 글로도 어려웠다. 책은 재밌지만 나만 아는, 간직하는 그런 무형의 것이었으니깐. 숙제로 내야 하는 독후감은 책 내용 요약이라고 나오는 구절을 비슷하게 몇 줄 적고, 몇 줄의 감상을 추가해서 내는 형식적인 것이었다.
글쓰기와는 담쌓고 살다가 대학교에서 처음 리포트를 쓰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무형식의 글이 그렇게 수모를 겪다가, 잠깐 나아지고, 학교를 졸업 후 그렇게 자취를 감추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병이 하나 생겼다. 그 병은 혼자 있는 걸 싫어하고, 못 견뎌했다. 친한 친구들, 선배 언니들과 대화로 폰을 붙잡고 살고, 자주 만나서 어울렸던 이유를 그때는 내가 사람을 참 좋아해서, 내향적 성향이 외향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믿었다.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하고, 다가갔던 이유도 그래서였다고.
진실은 내가 나와 서먹해서, 혼자 고민하는 게 싫어서, 힐링이라는 이름의 여행, 만남과 수다로 조금도 내 인생의 조용한 틈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잠깐의 고요가 어색해서, 혼자 있는 순간에도 음악과 라디오 앱을 틀어놓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타인에게, 세상에게 궁금해했지만~ 나를 알려고는 하지 않았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에 무지하고 자기와 서먹하기에. 글을 쓰면서 나를 알아가는 쾌감도 크다. 그렇게 마음을 다 쏟는 태도로 삶을 기록할 때라야 신체에 닿는 언어를 낳고 그런 언어만이 타자에게 전해진다.
- 작가 은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