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순, '배움에 관하여'
p. 282
"어른들의 인문학"이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인문학 종결자"라고 소개되는 강사를 통해서 전해지는 인문학은 갖가지 '해답'으로 이루어진다. 청중들에게 간결한 요약과 해답을 제시하면서 그들을 즐겁게만 하는 인문학 강의는 듣는 이들을 오히려 인문학적 사유 방식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이 점이 바로 인문학 상품화를 통해서 소비되는 인문학 열풍의 위험성이다.
인문학이라는 분야가 이렇게 가볍게 상품화되어 소비되고 있는 것은 아마 이 세계에서 한국만의 유일무이한 현상인 것 같다. 한국 특유의 인문학 상품화를 통해 한국에서의 인문학은, 밀란 쿤데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포장되어 백화점의 강좌 프로그램에서, 기업에서, 구청의 프로그램에서, 또한 출판 시장과 방송에서 소비되고 있다. 이러한 집단적 '인문학의 상품화'를 통해서 진정한 인문학적 정신은 근원적으로 외면되고 왜곡된다.
한국사회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넘어서는 방식은 도처에서 남용되고 있는 '인문학'이라는 이름의 상품화를 통한 맹목적 대중화에 의해서가 아니다. 가정에서, 공교육에서, 기업에서, 정치에서 '왜'라는 물음표를 존중하고, 그 '왜'에 대한 잠정적 해답들의 모호성과 불확실성을 존중하면서 치열하게 씨름하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기계적 암기가 전제되는 입시 중심사회, 무차별적 성과와 순위를 매기는 성과중심사회, 요약과 명쾌한 해답에 열광하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인문학적 열풍'은 역설적으로 '인문학 소멸'을 가중시킬 뿐이다. 한국의 대중매체가 이윤 극대를 위한 '인문학 상품화의 유혹'에 맹목적으로 굴복하고 있는 현상이 위험한 이유이다.
'인문학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언급한 저자에게 하고픈 나의 대답은?
영양소를 음식이 아닌 한 알의 영양제로 빠르게, 가볍게, 명확하게 전달하고 싶다. 즉 인문학을 하나의 정보로 인식했고,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원했다.
가벼운 인문학을 소비하는 소비자로서 나의 마음은 이렇다. 인터넷도 5G로 빠르게 연결되는 세상에서 천천히 생각해보고 싶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고민은 귀찮은 것이며 머리는 복잡해지고 심지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모호한 것'을 이해하는 단계로 가는 그 과정은 될 수 있다면 피해 가고 싶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잘게 씹고 소화한 '핵심'만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내가 읽지 않았던 책을 마치 정독 후 글로 옮겨 적은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싶었다. 내가 요약하지 못한, 느껴보지 못한 핵심이라고 하는 'Keyword'를 문제집에 정답 확인하듯 그렇게 쉽게 알고 싶었다.
또 하나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Flex) 일 것이다. 이런 책을 읽는다?!
난 이런 감성을 갖는다. 남이 알지 못한 것을 알고 사유하는 인간이다
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전에 알고 지냈던, 평소 독서를 많이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우연히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본인이 읽었던 '사피엔스'의 한 구절을 언급했다. 그리고 아주 멋지게 바라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 것도 몰라? 난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이미 알았는데~"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때는 몰랐지만~시간이 좀 지나보고, 내가 책을 더 읽고,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그때 그 사람의 'flex'와는 다르게 저자가 말하는 진짜 의미는 이해하지 못한 사람의 허황됨을.
물론 flex와 같은 자랑거리로 시작해서, 깊은 이해와 사유의 단계로 들어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가벼운 소비'의 단계에 머무르는, 아이쇼핑 같은 사례였다.
늘 미뤄두었던 to-do list처럼~ 내가 올해 더 많이 해 볼 과제는 '왜'라고 생각하는 것. 의식적으로 조금 더 들여다보는 생각과 미소를 머금은 일상이다.
가벼움에서 시작했지만 이해의 단계로 한 발짝 더 다가서는 걸음걸음
그림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40321.22022204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