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다
- 피터 드러커 -
3년 전, 어느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어쩌다가 학교 홍보 행사를 진행할 기회가 있었고, 일이 끝나고 몇 달 후 3명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내 앞에 행사를 같이 준비한 낭낭이가 "그거 다 내가 준비했잖아. 이직하고 엄청 바쁘고, 눈치 보였는데도 그거 내가 다 했잖아!"라며 앞에 앉은 콩콩이에게 자랑을 했다. 본인의 수고로움을 절대로 잊지 말라며.
순간 나는 토끼눈이 되어 눈이 동그래지고, 온몸이 얼어붙었다.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없는 자리도 아니고, 내가 앉은자리 맞은편에 앉아있던 낭낭이를, '의리의 아이콘'이라던 낭낭이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 행사의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기획, 준비한 사람은 나였다. 내가 지금 투명 인간으로 된 걸까? 아님 술 한 잔 마신 김에 본인의 역할을 뻥튀기하는 술자리 허세일까?
낭낭이도 참여는 했다. 다만 서류 업무와 카톡방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로서 보조 업무를 충실히 하였다. 오랜 시간을 친하게 지냈던 낭낭이였다. 의리의 아이콘, 낭낭이는 나에게는 특별히 의리가 없었다.
처음엔 낭낭이에게 분노했다. 내가 행사 한 달 전부터 대관 문의며, 행사 형식, 행사 진행할 강사 섭외, 행사 물품 픽업, 예상 비용 계산까지 다했는데, 무슨 근거로 저렇게 말을 하고 다니지? 그것도 내 앞에서?
억울했다. 낭낭이가 미웠다. 그리고 그때 아무 말도 못 하고 미라처럼 굳어버린 내가 더 미웠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생각해 보았다. 내가 무엇을 놓친 걸까?
그것은 문서화, 문서로 흔적을 남긴 건 낭낭이였다.
내가 여기저기 알아본 시도와 결과를 의식의 흐름대로 단톡 방에 올린 것을 낭낭이는 엑셀 파일 한 장에 정리했다. (누가 어떤 역할을 할지 이름까지 적어서)
그 문서가 말했다. 내가 다 한 거라고!!!
나는 기껏 아이디어 내고, 내 시간을 들여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물품 픽업에, 시간 할애뿐만 아니라 강사 섭외한다고 뛰어다녔건만,,, 마지막 작업인 문서화를 하지 않았다. 그 틈에 낭낭이는 엑셀에 정리했고, 전부 낭낭이가 한 것이 되었다.
몇 년 전 한시적이지만 정부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스템만 업무와 잘 연동시킨다면 엄청난 기회 요인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성공한 프로젝트로 만들려고 일단은 회사에 보고하지 않았다. 그런데 말해버렸다.ㅠㅠ 시도할려던 찰나에 친하게 지내던 동료에게도 살짝(?) 알려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회사 전체 메일에 내가 해보려던 그 아이디어는 동료의 이름으로 전 직원에게 공유되었다. 안 그래도 유능한 직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렇게 국가 정책이 바뀌는 것도 먼저 알아버린 대단한 사람으로 그렇게 입지가 더 단단해졌다.
문서화되지 않은 노력과 수고로움은 인정받을 수 없다.
- 스케치북-
위에 일들로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배운 것이 있다. 나의 노력은 문서화라는 화룡점정, 마지막까지 마무리를 철저히 했어야 했다. 그리고 정보라는 것 또한 '나만의 독점'이 아닌 구성원들과 먼저 공유했어야 했다. 집단 지성의 기초 작업으로. 그 아이디어가 내가 성공할지, 타인이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그때 이후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준비 단계뿐만 아니라 마무리 단계까지도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라는 노래 제목처럼 '배신은 문서화를 남기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