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
예사로운 아름다움도 어느 시기와 만나면 깜짝 놀랄 빼어남으로 빛날 수 있다는 신기한 발견을 올해의 행운으로 꼽으며, 안녕.
(전자책 51%)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평범하게 키우고 있다. 공개해서 남에게 도움이 될 만한 애 기르기의 비결 같은 것도 전연 아는 바 없다. 그저 따듯이 먹이고 입히고, 밤늦도록 과중한 숙제와 씨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숙제를 좀 덜 해 가고 대신 선생님께 매를 맞는 게 어떻겠느냐고 심히 비교육적이고 주책없는 권고를 하기도 했다.
일전에 어떤 친구한테 지독한 소리를 들었다.
"너 같이 애들을 막 키워서야 이다음에 무슨 낯으로 애들한테 큰소리를 치겠니? 그 흔한 과외 공부를 시켜봤니? 딸이 넷씩이나 있는데 피아노나 무용이나 미술 공부 같은 걸 따로 시켜봤니?"
그때 그 친구의 모멸의 시선이 지금 생각해도 따갑다. 아닌 게 아니라 내 애들 중 예능 방면의 천재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부모를 알량하게 만나 묻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두려움이 간혹 들긴 하지만 이다음에 '큰소리'치기 위해 지나친 극성을 떨 생각은 아예 없다.
아이들의 책가방은 무겁다. 그러나 단순히 책가방의 무게만으로 한창나이의 아이들의 어깨가 그렇게 축 처진 것일까? 부모들의 지나친 사랑, 지나친 극성이 책가방의 몇 배의 무게로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건 아닐지.
'공부해라'와 같은 말을 학창 시절에 안 듣고 자라온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 소수의 사람이라고 추정되는 사람은 '나'이다.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 아님에도 엄마는 나를 키우면서 '공부해라'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감사함이 아니었다.
'엄마와 아빠는 새엄마, 새아빠가 아닐까?'라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그 때 당시 읽었던 동화책 속 새엄마,새아빠 장면에서 떠올랐던 표현)
자유방임과 방목과 같은 환경은 내 나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고모, 외숙모, 이모 등등 엄마와 비슷한 또래의 집안 어른들에서도 '교육열'은 필수 아이템이었다. 사교육에 열을 올리던 그 시기에도 나는 공교육에 올인한 사람, 엄마의 방임과 무관심(?) 속에서 성장했다.
얼마 전 엄마와 사촌 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옛날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내가 초등학교 무렵에 주변에서 엄마한테 이렇게 애들을 키우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했다. 엄마도 가끔은 '이러다 애들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도 있었다고 하셨다. 여유롭지 않은 환경에서도 애들은 학원에 보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몇 달(?) 짧은 시간을 학원에 보낸 적도 있지만 학원과 성적이 일치할 거라는 기대감도 결과물도 없었기에 사교육은 짧은 시간,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또래와 비교하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준 엄마의 감사함보다는 내가 갈 길을 스스로 정해야 하는 부담감이 더 컸다.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도 일반고와 상고, 그다음엔 문과와 이과, 그리고 어느 학교에 어떤 전공을 결정할 때에도 온전히 나 혼자의 몫이었다.
물론 깊은 고민 없이 그냥, 내 또래 친구들이 좋다는 곳으로 원서를 내고 운 좋게 지금까지 살아왔다. 취직을 할 때도, 동생이 결혼을 할 때도 집에서 어떤 도움도 참견도, 간섭도 없이 다들 그렇게 스스로 '셀프서비스'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 자취생 브런치 작가님 글에서 '엄마가 보내주신 택배 안에 가득한 반찬'에 관한 글을 읽었다.
반대로 우리 집 택배 상자 안에는 '김치를 제외하고 고춧가루, 참기름, 채소와 같은 식재료'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 말은 곧 '스스로 알아서 만들어보아요~' 레고 블록처럼 택배를 받은 자취생은 그렇게 식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완성해간다. 챙김과 자유를 한 번에 느끼게 해주는 택배 내용물!

덕분에 나와 동생은 유튜브 요리 선생님을 바라보며 셀프 밑반찬 만들기 도전과 같은 미션을 수행하고, 엄마한테도 가끔 요리 솜씨를 보여주고 자랑을 한다는 점이 다른 점일 것이다.
사랑에는 다양한 표현 방식이 있다. 그리고 나는 박완서 선생님의 글에서 친엄마일까라고 생각했던 예전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어떤 게 정답일까?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사랑에도 다양한 표현 방법이 있었다. 나의 엄마는 최대한 부담 주지 않고, 멀리서 지켜보는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셨던 것 같다.
서로에게 부담스럽지 않도록, 느슨하고도 단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