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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면~사라질 것만 같아서!

김상민, '아무튼, 달리기'

by 그럼에도

p. 73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가면 '철학자의 길'이란 산책로가 있다. 괴테나 헤겔 같은 철학자들이 그 길을 거닐며 사색에 잠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0년 전 하이델베르크에서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길을 걷는 것과 진리에 닿는 길은 말 그대로 육체와 정신의 서로 다른 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달리기를 시작하고서야 그 의미를 조금 헤아리게 되었다. 육체와 정신은 면밀히 연결돼 있다. 우리는 몸을 움직일 때 생각의 본질과 한 걸음 가까워진다. 문과 출신이라 과학적인 근거로 멋들어지게 설명할 순 없지만 경험담은 들려줄 수 있다.

이중섭 우표.png 이중섭, 엽서

달리기로 만들어내는 빈틈 사이로 이따금 생각 하나를 끼워 넣는다. 그 생각은 대부분 무거운 질량의 고민들이다.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앙금 섞인 감정이나 온갖 이해가 뒤얽힌 어른의 일, 삶에 치여 신음하는 나를 향한 실망일 때도 있다. 그런데 달리다 보면 종종 그 고민들이 해결되곤 한다.


달리기 시작하면 식혜 밥알처럼 가라앉아 있던 온갖 생각들이 섞이고 뒤흔들린다. 그 과정에서 잠시 잊고 있던 생각을 다시 떠올리거나 잘못된 곳에 묵혀 있던 마음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는다. 그제야 정돈된 마음 사이로 고민이 또렷하게 정체를 드러낸다.


달리면 모든 게 단순해진다. 아무리 무거운 고민이라도 달리기 시작하면 점차 그 부피가 줄어든다. 몸이 바쁘게 돌아가니 평소처럼 복잡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다. 우선순위 정렬 버튼을 누른 것처럼 중요치 않은 것들은 자연스레 생각의 바깥으로 밀려나고 마음 한가운데에는 고민의 본질만이 남는다.


그렇게 본질과 직접 대면하면 생각보다 쉽게 고민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당시에는 세상 복잡하고 어려웠던 고민이 지금 돌이켜보면 참 별거 아니었음을 깨닫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깊은 통찰로든 시간의 흐름이든 고민의 단단한 껍질을 벗겨주는 과도가 되어준다.

오리.png 이중섭, 엽서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뜀박질의 숨은 기능이다. 늦은 밤이어도 무거운 마음 하나가 일상 전체를 짓누른다 느낄 때면 기어코 운동화 끈을 고쳐 매는 이유이기도 하다.


달리는 게 좋을까? 어렸을 때부터 달리기는 꼴찌를 예약하는 아이였다. 그런 뿌리 깊은 역사로 인하여 나에게 달리기는 열등감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세바시 강연에서도 '러너'라고 하는 분의 강의를 본 이후, '달리기'에 관한 책이 가끔씩 눈에 들어왔다. 뛰면 달라질까? 올해의 목표와 갖고 싶은 어떤 것들을 생각하려고 앉아 있었다. 현실은 문득문득 인간관계의 피곤한 기억과 우울한 생각들이 수시로 끼어든다.


앉아서 하는 생각은 무수한 잡념과 핸드폰의 스마트한 세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혼돈의 카오스! 그래서 밖에서 달리다 보면 이런 수많은 상념들이 조금 내려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덤으로 다이어트의 효과도 기대하고^^


미세먼지가 걷히면 퇴근하자마자 집 근처 대학교 교정을 한 바퀴 뛰어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새로운 30일 나만의 소소한 이벤트를 갑자기 생각해냈다. 살면서 스스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달리기~ 30분 걷다 뛰다를 목표로 내일은 소소한 이벤트 1일을 기약한다. 미세먼지가 걷히는 날은 달려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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