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럼에도 Apr 08. 2021

상실로 잃은 것과 얻은 것

홍창진, '괜찮은 척 말고, 애쓰지도 말고'

p. 123

[ 상실의 고통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


 안타깝게도 우리는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헤어짐 앞에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 지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슬픔이 크다는 건 그만큼 자신에게 큰 사랑이 머물렀다는 증거입니다. 깊은 절망의 터널을 통과하며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합니다.


 + 중략


 사람은 헤어져야만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이별을 통해 비로소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재의 아픔에 힘겨워했던 나는 떠난 그분의 내면에 비로소 들어섰음을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그렇게 떠난 이와 함께 일상을 살아갑니다. 사랑은 이렇게 함께할 때보다 떠나갔을 때 그 가치를 발합니다. 상실이 주는 귀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Carl Blechen, 'Forest path near Spandau'

 사람과의 헤어짐 이후로 그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남자 친구, 친하게 지냈던 친구, 선후배,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 등등 그동안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은 누군가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어떤 '인상'을 남긴다.


 가까이할 때에는 못 느꼈던 것들을, 시간이 지나고, 공간이 떨어진 후에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어떤 것에는 달콤함과 씁쓸함, 그리고 공허함과 같은 여러 조각의 감정이 묻어 나온다.


 막내 외삼촌은 엄마, 아빠와 같다고 느낄 만큼 나에게는 특별한 존재였다. 표현이 서투르고, 낯가림이 심했던 어린 시절, 그렇게 좋아하던 외삼촌을 보고도 웃기만 하고, 말을 거의 하지 않았었다. 21살이 되던 어느 날, 외삼촌이 사고로 한 순간에 세상을 떠나셨을 때가 인생의 첫 번째 가장 큰 상실이었다. 장례식장에서도 외삼촌의 마지막을 믿지 못하였고, 눈물도 나지 않았었다.


  그 후 반년이 지나서, 자다가 새벽에 깨는 날이 시작되었다. 눈을 떴을 때는 베개가 축축하게 젖어 있고, 볼에는 눈물이 흘러 있었다. 자는 동안 흐느껴 울던 몇 달의 시간을 보내고, 서서히 외삼촌을 잊어갔다. '사랑'이라는 건 떠난 후에 그 모습과 형체가 드러나는 걸까? 한참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삼촌이 떠났던 날처럼, 비가 많이 오는 여름날에는 문득문득 삼촌 생각을 한다.


 오랜 시간 마음을 의지했던 친구를 올해부터 만나지 않기로 했다. 마음을 정리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오랜 시간과 추억, 마음, 에너지 그리고 친구들의 각종 경조사까지 챙겼던 그 시간을 여기서 멈춘다는 것은 몇 년을 고민할 만큼 어려운 것이었다. 평소 거절의 말도, 부탁도 잘하지 못하던 내가 이런 엄청난 결단을 내리기까지는 너무나 힘들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면, 내가 후회하지 않을까?' 오히려 더 외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막상  달의 시간이 지난 지금, 가족들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나눠왔던 사이였음에도 생각나거나 그립지 않았다. 후회되지도 않았다. 이미 오랜 상처가 쌓여서인지, 고민한  년의 시간 동안 마음의 정리가 이미 끝났던 건지는   없지만. 간혹 '그때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라는 궁금증이  때도 었지만 친구에 대한 아쉬움조금도 남지 않아서 오히려  허탈했다.


 그동안의 시간은 뭐였던 거지?
그리고 나는 그 친구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정말 친구였을까?


 시간이 관계를 숙성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관계가 상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흔적도 없이 증발해있었다.


 거절을 해보아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상실을 경험한 후에는 어떤 사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상실은 단어 그대로 '잃었다'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의미를 얻었다'라고 나는 명명한다. 지나 봐야 알 수 있는 이야기.

작가의 이전글 노는 게 남는 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