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미, '더 이상 웃어주지 않기로 했다'
(전자책 23%)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존재 이유는 아니다
미국의 비영리 단체 '걸수 후 코드'의 설립자이자 CEO인 레시마 소자니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완벽한 딸로 살아왔다. 서른세 살에 의원직에 도전했지만, 많은 득표 차이로 낙선하게 됐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리스크를 수반한 진정한 도전을 시도하고 난 후 그녀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여성들은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내적인 압박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기피하도록 교육받아왔다,
남자아이들은 용감해지는 법을 배우고, 여자아이들은 완벽해지는 법을 배운다
는 것을 말이다.
세계적인 IT기업인 휴렉팩커드(HP)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구직 시 자신이 조건에 100퍼센트 부합할 때 지원하는 반면, 남성은 60퍼센트만 부합해도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여성은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을 때만 도전한다는 이야기다.
나 역시 취업 전선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 "여성 문과생이니 큰 기대를 하지 말고 하향 지원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고용시장이 얼어붙어 있으니 진득하게 6개월간 인턴 경험을 채우고 작은 기업 위주로 지원하라는 조언도 들었다. 하지만 끈질기게 지원한 결과 3개월 만에 외국계 금융 회사에 합격하게 됐다. 전략 부서로 이동을 하고자 했을 때도 주변에서는 여전히 쓴소리를 해댔다. 핵심부서에서는 미혼의 남자 직원을 선호하며, 내 학벌이 부족하다는 돌직구도 있었다. 당시 내 마음가짐은 '잘되면 좋은 거고 아니면 뭐,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되지'였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내가 바라던 대로 됐다.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말로 내 인생에 훈수를 두던 비관주의자들이 제자리에 있을 동안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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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문턱을 낮추는 또 다른 방법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시뮬레이션해보는 것이다. 무모하게 지원했다가 탈락한다면? 뭐, 그거야 남들에게 조롱 좀 받으면 되지. 공항에서 짐을 잃어버린다면? 필요한 물건이라면 다시 사면되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미니멀하게 살아봐도 괜찮지. 이렇게 최악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풀어내 보는 것이다. 내가 주로 떠올리는 최악의 상황은 도전했다가 전 재산을 잃고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것인데, 사실 생각해보면 그리 나쁘지도 않다. 부모님 집의 채광이 내 집 채광보다 더 좋으니까. 그리고 좀 망하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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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란 두렵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겨울날 전기장판과 같은 따뜻한 안정감에 머무를 때, 증명된 안전한 길을 택할 때 우리의 성장은 여기서 멈춘다.
사람들의 편견이 싫다면서도, 나도 어느샌가 그런 편견에 갇혀 있었다. 원하는 부서에 내부 공고가 떴을 때도 지원하고 싶은 마음과 탈락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대립했을 때, 편견과 고정관념이 홀연히 나타났다. '새로운 부서에 가기에 나이가 많아’, 지원 자격에 지금 갖고 있는 영어 실력이 부족해’, 내가 갖고 있는 부족함이 이번 기회에 다 드러날지도 몰라’, 등등의 생각이 내 발목을 잡았다.
없던 취미를 가질 때 시작했던 용기와 업무 상의 용기는 다른 걸까? 생업이라는 것이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실패했을 때의 뒷감당이 취미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무게감을 갖고 있어서인지. 나는 도전의 순간이 다가오면, 늘 겁이 많고, 용기가 없었다.
그런 날이 올까?
지원자의 요구 사항에 딱 맞는 그런 조건을 다 갖추고 나면,
그때 나는 몇 살이지?
나는 조건에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서 지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조건은 평생 갖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 난 영영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없다는 말인가?
굳이 남녀를 구분하지 않아도, 가끔은 말도 안 되는(?) 조건의 지원자가 나올 때가 있었다. 직원들끼리 다들 수군거리고, 험담의 대상이 되곤 했었다. 탈락이라는 결과가 나올 때도 있었지만 합격이 되는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업무를 배우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았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하는 걸까?
무기력이 습관이 되고 더 무서운 건, 포기가 일상이 된다는 것이다. 떨어지면 어떻고, 험담의 소재가 되면 어떤가? 험담의 주역들은 내가 뭘 하든, 하지 않든 간에 다양한 아이템을 생산할 텐데. 난 조금의 부끄러워질 용기도 없었던 거다.
그러던가 말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