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한눈에 알아보는 그런 안목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의 장면]
몇 주 전, 블로그 리뷰도 많이 보이고, 실제로도 분위기 좋은 파스타집에서 소개팅을 했었다. 인사 후, 그날 소개받은 분은 메뉴판에서 가장 비싼 코스 메뉴를 추천했다. 메뉴판에 가장 크게 인쇄된 코스 메뉴는 커플 기념일에나 먹을 것 같은 구성과 가격이었다. 한 마디로 초면에 꽤 부담스러웠다. 나는 웃으면서 거절하고, 단품으로 리소토를 시켰다.
눈으로 보기에도 예쁜 메뉴는 맛있기까지 했다. 양은 적지만 예쁘게 플레이팅 된 요리였다. 처음 먹을 때는 좋았지만 평소보다 뭔가 많이 느끼했다. 버터나 오일을 평소보다 아낌없이 넣어 주신 걸까? 아님 어색한 분위기 탓에 그렇게 느낀 걸까?
적은 양의 리소토에도 나는 피클을 리필했고, 소개팅남은 맥주를 주문했다. 버터향 가득한 풍미는 처음엔 맛있었지만 반도 다 먹지 않아서 탄산이나 피클 같은 다른 재료를 불러들였다... 훈훈한 대화가 마치고 일어섰을 때, 사장님이 오셔서 소개팅남과 인사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소개팅을 위해 찾아본 그런 장소가 아니었다. 소개팅남이 좋아하는, 종종 오는 단골집이었다. 소개팅남은 기름진 요리를 특히나 좋아한다고 했다.
그날의 대화는 대강 이러했다.
서울 OO동네의 오랜 토박이, 학교, 부모님의 직업, 골프, 회사 특성상 얻게 되는 혜택 등을 처음 만난 날, 들려주었다. 참고로 나는 묻지도 않았던 말이었다. 아마도 누군가를 만나면 의례적으로 시작하는 문구 같았다. 서울 중산층 가정의 표본 같은 조건을 들려주면, 상대방의 반응이 좋았었나 보다. '아~그래요.'로 생각보다 가볍게 넘기는 내 모습에 조금 실망한 것 같았다.
2번의 만남, 1달간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지금 느낌은 = 자동차의 공회전? 야구의 헛스윙?
시간이 갈수록 알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은 뭘까?
메시지를 주고받던 어느 날, 내가 느낀 그 이상한 느낌의 실체가 보였다.. 말하는 문장의 주어가 달랐다. 소개팅남이 말하고 있는 그 말의 문장 속, 주어는 대부분 이랬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They, She, He~'로 시작했다. 즉, '남들이 그러는데, 회사 사람들이 그러는데~'로 시작했다. 문장에 타인은 많았고, 본인 자신은 없었다. 간혹 본인이 주어로 등장하는 문장은 골프와 동남아 여행담이 대부분이었다.
소개팅남의 자랑과는 반대로, 그분의 회사 상황은 좋지 않은 편이었다. 어려워진 회사 사정으로 1년 반째 근무가 줄고, 월급이 줄어있다는 것은 주선자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대신 주 5일 근무가 아니므로 시간 여유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궁금했던 '마음 졸이는 그런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물어보았다.
평소 걱정 많고, 이런 상황에 민감도가 높은 나는 같은 상황이라면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다. 평소보다 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런데 대답은 예상을 한참 빗나갔다.
이렇게 경영을 한 회사에 대한 원망은 컸지만 그렇게 쉬는 만큼 골프 레슨을 받고, 실력이 늘어서 좋았다고 했다. 이 한 문장이 1년 반을 불규칙하게 보낸 것에 대한 소감과 느낌이라는 점이 충격적이었고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에게는 어떤 면에서 신선하기까지 했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한다는 걸 알지만 이렇게 실제로 보고, 듣게 되면 이해하기가 참 어렵다. 정리 해고에 지금의 나는 포함되지 않으리라는 강한 믿음도 그렇고. 제삼자가 듣기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현재 상황에 나름 만족하는 것 같았다.
불안한 시간을 사람들과의 만남과 골프로 가득 채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행복 지수가 높은 사람이 아닐까? 나와는 정반대 성향의 사람이라서 궁금했다. 이성적인 끌림은 없었지만 정반대 성향의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2번째 만남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너무 부정적인 성향의 사람이 아닌지도 궁금해졌다.
2번째 만남에서 느낀 건, 소개팅남이 말하는 것만큼 그리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는 것이다. 혼자 마주하기 힘든 불안을 사람과 골프로 채우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생각이나 의견을 표현하는 말이 아닌, 정말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쩌다 본인이 주어로 등장하는 말은 (돌려서 표현했지만) 모두 자랑이었다. 마치 선물 받은 반지 자랑이 하고 싶어서 일부로 손을 크게 흔드는 여자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말하는 순간 처음으로 공통점을 갖게 되었다. 같은 뮤지션의 팬이라는 유일한 공통점! 기쁨도 잠시였다. 내가 신입 팬으로서 푹 빠져 있다는 점을 듣고는 '알고 보면 OO은 음악에만 빠져서, 현실적으론 남자로서는 너무 별로죠'라며 짧았지만 비하하는 말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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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얘기가 나와서 국산차 디자인을 말했더니, '그래 봐야 차 잘 서고, 잘 나가는 건 수입차죠.'라며 이번에도 짧고도 강하게 디스(비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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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얘기 중에 MZ세대가 나왔다. 그때 본인도 잘 눌러온 속 얘기가 나와버렸다. 자기 업무가 아닌 일을 거부하는 MZ세대 후배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월급 받으려면 하던가, 아님 나가시던가'라고.
두 번 만났다고 그 사람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외모와 함께 느껴지는 어떤 인상은 있지만, 그 인상이 모든 걸 말해주지는 않는다. 특히 이번 만남은 그랬다. 곰돌이 푸 같은 외모로 웃으면서 말하는 소개팅남은 언뜻 보기에는 마음씨 좋은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타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말과 함께 본인과 다른 생각이나 모르는 분야는 바로 디스 했다. 뭔가 강압적인 본성을 숨기는 사람처럼 생각을 물었을 때는 짧게 대답하고, 급하게 대화 주제를 바꿨다.
헐~반대로 나에 일상에 대해서는 면접관처럼 꼬치꼬치 묻고, 본인의 일상은 '집돌이', '내향성'이라는 단어로 급하게 마무리하던 묘한 캐릭터.
첫날 만났던 장소의 리소토와 요리처럼 언뜻 보면 괜찮았고, 돌아서면 느끼하고도 이상한 그 맛처럼 그날 만난 사람은 언뜻 보기 괜찮았고, 가까이 보기엔...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렇게 나와 맞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사람을 배웠다.

팍팍한 일상에 달달한 낭만이 부족한 여름날~매력적인 자두향을 맡으며 감성과 달달함을 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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