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나뭇잎이 올라오는 순간

by 그럼에도

올해 봄이 오기 전 2월~마트에서 우연히 작은 고무나무 화분을 보고, 집에 데려왔다. 가지 하나가 잘린 모습이 전쟁터에서 다리에 부상을 입은 녀석처럼 안쓰럽고도, 뭔가 강인하게 생긴 작은 나무였다.


6월에도, 집에 처음 온 그 모습 그대로였다. 성장이 멈춘 나무처럼 다른 화분은 키가 크거나 몬스테라는 새로운 잎이 빼꼼하게 나왔는데도 이 나무만은 그대로였다. 다들 성장하는데, 혼자만 시간이 멈춘 아이.

초록색 줄기부터가 새로나온 잎사귀

6월 중순쯤부터 새로운 잎사귀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7월 중순인 지금은 주변 화분 중에서 2021년 SS 신상이라고 할만한 잎사귀가 가장 많이 나온 아이가 되었다.


임계점을 넘었다. 에너지를 응축했다가 적당한 시기가 되어 결괏값이 보이는 시기가 지금이다.


인생은 모르지만 사람의 일상도 이렇게 닮아있는 것 같다. 생각하고, 인지하고, 배우고 또 돌아보는 일련의 과정의 시간이 쌓여있을 때,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서 변곡점을 만든다. 그리고 그래프가 급속하게 변화하는 모습과 방향이라는 결괏값을 볼 수 있다.


좋아하지 않는 단어 중에 연륜이라는 말이 있다. 나도 모르게 생긴 이 부정적인 느낌은 주로 윗사람이나 선배들의 잔소리에 주로 등장해서인지 왠지 모를 반항심이 생긴다.


어떤 일을, 어떤 과정을 많은 시간 했다고 해서 저절로 통찰력이 생기지 않는다. 똑같은 장면을 매일 보면서 어떤 경향성, 즉 패턴을 읽고, 어떤 흐름을 볼 수 있는 사람, 이어서 다음 장면을 예측하는 사람의 1년과 똑같은 일과 경험을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는 사람의 10년은 비교할 수 없다.


'연륜'이라는 단어에는 '생각과 고민, 깨달음, 보완하는 어떤 노력'이 들어갔을 때만 힘을 발휘한다. 오랜 시간과 경험이 시들어가는 포도송이가 될 수도 있고, 포도주로 숙성이 될 수도 있다.


오랜 시간이 꼭 정답은 아니다.


선배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듣지도 않고, 후배의 말을 흘려듣지도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같은 일에서도 생각을 하고 바라보는 것과 늘 해오던 대로 하는 것의 결과는 다르다. 꼭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뭇잎도 방향성이 있다. 되도록 해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조금 더 많은 잎을 틔우고, 더 큰 잎사귀를 만든다. 나날이 잎사귀를 새로 만들고, 커지는 고무나무를 보면서 지금의 나를 생각한다. 다양한 경험과 생각, 그리고 방향감각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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