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옥수수, 겨울엔 귤을 주식으로 먹는 이 오랜 익숙함과 오랜 사랑을 어찌할 것인가? 먹성 좋은 딸은 엄마가 텃밭에 옥수수를 심는 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나의 식탁에 올라왔다.
옥수수를 맛있게 먹는 많은 요리법이 있지만 나의 요리법은 언제나 간단하다. 찜기에 찌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 식품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물에 삶는 것보다는 찌는 방식이 영양에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옥수수 잎을 떼어내지 않고 삶아준다.(잎을 제거하고 찔 때보다 잎이 있는 상태가 더 단맛이 느껴진다)
그렇게 하루 한 끼는 매일(?) 같이 옥수수를 먹고 있다. 언제쯤 질릴까? 그럼 그때부터 다이어트해야지!

오랜 익숙함, 오랜 시간 나에게 이어져오는 습관과 관성이 있다. 매주 일주일에 한 번 40분씩 피아노 레슨을 받는다. 그전에 배웠던 부분을 검사받는 순간에 심장이 얼마나 요동치는지, 집에서는 잘 치던 것도 레슨만 시작하면,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 '렉'이 걸린 컴퓨터 화면처럼, 어떤 구간은 틀린 곳을 또 반복한다.
간혹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한 날은 악보를 보지 않고 칠 수 있을 만큼 연습한 경우였다. 음대 진학을 코 앞에 둔 고3처럼 나는 왜 이렇게 심하게 긴장할까?
내가 피아노를 처음 배운 건 8살로 기억한다. 학원에 가면 원장님께 맞는 날이었다. 내가 피아노를 치면, 원장님은 30cm 자로 손등을 때렸다. 손이 너무 심하게 움직인다면서 ㅠㅠ 피아노는 예쁘고 좋은데 학원에 가는 건 무서웠다.
그렇게 학원의 기억은 길지 않았다. 학원비를 내러 오셨던 엄마에게 원장님은 '이 아이는 피아노와 맞지 않아요. 가르치지 말라'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원장님도 내가 피아노 치는 모습이 꽤나 스트레스였었나보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사교육은 짧게 끝났다. 그리고 음악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 갖게 되었다. 하지만 몇 년 전 우연히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나의 오랜 생각과는 달리 피아노는 취미가 되었다. 하지만 레슨을 받은 지 1년이 넘어도 '레슨 울렁증'은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운전을 하다가 뜬금없이 8살 때 기억이 났다. 이런 게 잠재의식인 걸까? 이젠 누구도 나를 때리지도 않고, 나를 때릴 수 없는데도 어렸을 때 그런 생각이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걸까? 이런 생각이 떠오른 후부터 레슨을 받기 전, 학원 건물 1층에서 달달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서 '괜찮아. 잘할 수 있어'라고 혼잣말을 한다.
모 심리학과 교수님의 영상(곽금주 교수님의 영상으로 기억)에서 본 적이 있다. 사람의 잠재의식은 너무나 크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보이는 우리의 행동은 빙산의 일각처럼 아주 작은 조각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넌 못할 거야'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너무 싫어했던 그 말이 어쩌면 내 잠재의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중하위권의 성적이었다. 2학년이 되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첫 시험에서 반에서 3등을 했다. 그때 기쁜 마음보다도 갑자기 너무 높아진 성적의 이유를 ‘사람들이 커닝으로 의심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가질 만큼 나의 첫 번째 성공에도 웃지 못했다.
타고난 귀차니즘과 더불어 '넌 못할 거야'라는 말, 잠재의식에 갇혀 살아가는 건 아닐까?
옥수수처럼 달달하지 않지만 나라는 사람의 조각을 알알이 맞춰 가고 있다. 나도 나를 알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