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선물하고 싶은 날

by 그럼에도

엄마의 사랑, 택배가 도착했다!

먹는 거 좋아하는 큰딸을 위해, 몇 년 전부터 엄마는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우리 남매 중에 먹성이 좋은 딸, 나를 위해서다. 모두 입맛이 제각각이라 누구 하나 겹치지 않는 신기한 입맛을 가진 남매를 키운 엄마는 요새 딱 1명을 목표(?)로 텃밭에 옥수수를 심으셨다.


우리 집에 옥수수를 사랑하는 사람은 딱 1명이다. 다들 먹기는 하지만 구태여 찾아 먹지 않는다나 뭐라나...


해마다 키우시지만 올해는 모종을 배로 심으셨고, 택배로 보낸 양이 무려 40개! 혼자서 다 먹을 수 없는 양을 보내셨다. 엄마의 사랑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다.


낯선 동네에 이사 온 지 2년이 다돼가는데, 선물을 누구에게 드릴지 생각해 보았다.


후보 1번, 유일하게 얼굴을 아는 이웃, 앞집! 앞집과 나는 좀 서먹한 사이다. 택배가 잘못 오고 간 일이 있었고, 작년엔 앞집 남자분이 노 마스크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현장에서 나는 그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계단으로 10층 넘는 거리를 올라갔다. 그 이후로 앞집 남자는 내가 아파트 입구에 서 있는 걸 뻔히 보고도, 닫힘 버튼을 보란 듯이 누르는 그런 황당하고도, 불편한 사이로 살고 있다. 후보 1번, Pass!


그다음 후보 2번과 3번은 대화는 없지만 가볍게 목례하는 사이다. 두 후보의 공통점은 환경 보호에 앞장서신다는 것!


한 분은 매주 일주일에 한 번 분리수거를 도와주시는 경비원 아저씨이고, 또 다른 한 분은 아파트 앞 상가에 저녁때쯤 오시는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


집에 박스가 제법 들어올 때는 아파트 분리수거 대신 상가 쪽에 카트를 끌고 가서 전해 드리고 온다. 환경 보호와 베란다에 박스를 쌓아두지 않고, 바로 전달할 수 있어서 1석 2조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우리 집엔 큰 카트가 있어서 전달하기 쉽다^^;;)


당첨되신 두 분에게 선물을 나눠드리기로 했다. 비닐팩에 들어가는 만큼 넣어서, '오다 주웠어요~'느낌 나게 쿨하게 드릴 생각으로 내려갔다. 오늘 경비실에는 처음 뵙는 분이 계셨다. 아빠보다 연세가 더 위로 보이시는 분이 의자에 곤하게 주무시고 계셨다. 이렇게 작은 선물로 굳이 단잠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드릴까 잠깐 고민하다가, 창문을 열고, 옥수수 봉지를 두고 나왔다. 선물이라고 '메모라도 남겼어야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다 단잠을 깨울 것 같아서 그냥 나왔다.


폐지 줍는 할아버지는 아파트 앞 상가에 오는 시간이 늘 일정하시다. 저녁 6시에서 7시 사이에 상가에서 내놓은 박스를 정리하고 계신다. 뛰어가서, 옥수수 봉지를 건네고, 목례만 하고 빠르게 걸었다. 역시 소심한 사람은 이렇게 또 티가 난다. 뭐라 설명하기도 그렇고, 쿨한 느낌보다는 빠른 속도로 승부했다.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기 1일(8살 조카 따라하기)

요새 저녁 메뉴는 늘 옥수수다. 밥보다 더 많이 먹는 옥수수! 이번 기회에 옥수수 사랑을 정리할 것인가?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할 것인가? 확실한 결론은 갸름한 턱선은 당분간 만날 수 없다는 것 ㅠㅠ

sticker sticker

대화가 적은 모녀 사이는 이렇게 물질로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엄마의 사랑을 고마운 분들에게도 전해 드렸다. 이번 기회에 내 주변에 어떤 고마운 분이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무뚝뚝한 딸에게 박스 가득 보내는 엄마의 마음도!

8살 조카가 아이패드에 그린 ‘장미와 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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