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찬,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모든 것이 무너진 것 같은 순간, 그 절망과 고독이 재생의 발판이 될 수 있음을 그때는 잘 알지 못합니다.
인생길의 비밀, 인생길의 배후를 우리는 늘 한참 지나 돌아봐야만 알게 되는 모양입니다.
[곡선의 힘]
서안나
남한산성을 내려오다
곡선으로 휘어진 길을 만난다
차가 커브를 도는 동안
세상이 한쪽으로 허물어지고
풍경도 중심을 놓아 버린다
나는 나에게서 한참을 멀어져 있다
나는 곡선과 격렬하게 싸운다
나를 붙잡으려
내가 쏟아진다
커브 길을 돌아
나에게 되돌아오는
몇 초 동안
나의 슬픈 배후까지
슬쩍 열어젖히는
부드러운
곡선의 힘
'난 운이 좋은 편일까? 운이 나쁜 편일까?'
대체적으로 나의 운은 반반이다. 하지만 한때 운이 나쁜 일들이 몰려온 적이 있다. 좋은 일은 가끔씩 하나씩 하나씩 찾아온다면, 힘든 일은 한꺼번에 와르르 쏟아진다는 점이 다른 점이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자꾸 생각나고,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물속 깊이 더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몸에 힘을 빼고, 물 위로 몸이 뜰 수 있도록 노력을 잠시 멈췄을 것이다.
'안 되면 되게 하라'같은 자기 계발서의 '노력과 열정'시리즈 책을 열어 보지 않았을 거다. 책은 필요하지만 그때 상황에 필요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길을 헤맨다고 놀랠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지금 뭘 해야 하는지를 하나씩 종이에 적어볼 거다. 그리고 넘어진 마음을 일으켜 세울 때, 자기 계발서를 열어봤을 거다.
시간을 거쳐서 보면 곡선도, 직선도 내가 걷는 길이다. 각각의 시기가 주는 그런 의미가 있는데, 그때 나는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징징거리고, 나를 원망했다. 가끔은 이런 게 삼재(?)가 아닌 건지. 친구들 추천으로 점을 보러 간 적도 있었다. 점쟁이는 다가올 미래를 알려주기보다는 지금은 '뭘 해도 안될 시기'라는 아픔을 공인했다고나 할까.(그리고 점쟁이들이 말한 미래는 늘 틀렸다ㅠㅠ)
성공보다 실패가 주는 공부가 더 값지고, 배울 것이 많았음에도 그런 기회를 흘려보냈다. 실수와 실패는 뒤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깨닫지 못한 잘못과 실수는 살면서 되풀이된다.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과제한다고, 구글 신과 그렇게 대화를 하고, 검색을 하며 느낀 점이 있었다. 잘 나가는 회사에 대해서는 어쩜 자료가 그렇게 넘치고, 분석은 완벽한지. 초짜인 내가 봐도 성공할 이유는 분명했다.
반대로 망했거나 망하고 있는 회사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었다. 가끔 있는 자료도 부분적인 조각이나 특정한 관점(보통은 사주)에서 노조를 가리키는 기사가 다수였다. 사람들은 인생에 있어서도, 비즈니스에 있어서도 성공한 사람만 바라본다. 그리고 우리의 매스컴은 안 그래도 후광(아우라)이 비치는 그 대상에 조명판까지 덧대서 끊임없이 보여준다.
성공의 이유는 명확하고, 단순하다. 반대로 실패의 원인은 복잡하다. 왜 그런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다음 과제는 무엇인지 등등을 하나하나 분석한 것은 없었다. 과제를 준비하던 나의 관심사는 현재 망해가는(?) 회사였다. 특이한 나의 관심과 부족한 자료로 인하여 나는 시나리오 작가처럼 과제를 완성하고, 발표했다. 망해가는 회사 전문이라고 누군가는 나를 '기업사냥꾼'이라고 불렀다.
내가 남들보다 직선 길이 아닌 곡선 길을 더 많이 달려서일까? 아님 나의 시야는 여러 각도를 비추는 걸까? 내가 걸은 곡선 길의 교훈은 '각각의 순간과 시간이 주는 의미'가 있었다. 달리기 좋은 직선의 길에서 보지 못했던 장면을 곡선 구간에서만 바라볼 수 있다. 넘어졌다면 기존의 달리기 방법이나 내 주변 환경까지도 바꿔야 한다. 쇼트트랙 선수의 달리기가 직선 구간과 곡선 구간이 다르듯이. 곡선은 직선과 다른 힘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목표를 향해서 간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대신 이 시기는 남들보다 뒤처진 것 같은 마음과 혼자만의 외로움은 보너스로 주어진다. 아싸, 아웃사이더의 길. 누구도 원하지 않는 길이다. 남들보다 빨리 뛰어도 모자랄 시기에 곡선이라니? 거기다 끝은 알 수 없다. 이런 미로공원을 빠져나올 수 있게 하는 사람은 오로지 '나'다. 내 인생이니까.
곡선을 걸으면서 배웠다. '곡선의 시간'이 주는 그때그때의 의미. 새로운 힘을 얻고, 다시 시작하는 기회. 기회는 위기와 기회의 줄임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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