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의외로' 멋지다!

by 그럼에도
인생은 '항상' 멋진 게 아니고, '의외로' 멋질 수도 있다.
tvN, ‘알쓸신잡’

어제 엘리베이터에서 한 사람을 마주쳤다. 옆에는 흔치 않은 털을 가진 포메라니안과 함께였다. 말로만 듣던 A였다. (A와 포메라니안의 외모는 듣던 대로였다) 나와는 전화 통화도 했던 사이. 하지만 실제로는 처음 보았다.


올해 봄, 동생과 산책하던 우리 집 막둥이 목줄이 풀렸다. 더 정확히는 목줄 연결고리가 제대로 잠기지 않았다. 막둥이는 진돗개라고 하기에는 다리가 짧고, 일반적으로 보기에는 덩치가 있는 아이다. 목줄이 풀리자마자 근처에 있던 입주민 옆으로 다가가서 A님의 운동화 냄새를 맡았다. 놀란 입주민 A님은 본인 강아지의 목줄을 들어 올렸고, 작은 포메라니안은 갑자기 하늘 위로 공중 부양을 하는 일이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동생과 A님은 안면은 있었고, 우리 집의 덩치 있는 아이를 늘 불쾌해하면서 노려보는 사람이었다. 놀라게 했으며, 목줄이 풀렸으니 바로 사과했다. 하지만 A님은 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했으며 과태료가 부과되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경찰이 가고 한 시간 후쯤, 입주민 사이트에 큰 개를 키우는 정신병력이(?) 있는 여자, 계단 추락이라는 엄청난 스토리의 글을 올렸다. 스토리는 당사자가 아니었다면, 읽는 나 역시 분개할 만큼 막장이었다. 입주민의 질서와 정의를 위해서 고소를 한다는 선언으로 마무리한 글.


여하튼 고소장 제출 후에 A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웃으면서 합의금을 부르며 협박했다. 나를 화나게 했으니, 합의금을 더 올려야겠다는 말을 남겼던 A.


그리고 병원에 진단서를 받았다고 했다. 분명 경찰에 신고했을 때도 다쳤다고 하지 않았는데, 며칠 후 멍든 다리와 진단서가 첨부되었다. TV에서 보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궁금한 건 멍은 어떻게 생긴 걸까? 입주민 사이트에 올린 것처럼 계단 추락이라면, 계단 높이 1.8m였고, 사실이라면 중환자실 입원 감인데. 거기다 멍 자국이 이상했다. 계단 추락이라고 하기에 멍의 부위는... 참 일정하고 규칙적이었다. 체벌의 흔적처럼.


목소리만 들었던 A를 실물로 본 나는 너무 놀랐다. 왜소한 너무나 수수한 사람이었다. 한 마디 하면 울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설마 그런 엄청난 행동과 웃으면서 협박을, 그리고 종종 회사의 비품을 슬쩍한다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외모였다.(알고 보니 동생과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사이였다)


그런 A의 강아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 운동화 냄새를 맡았다. 목줄을 맸지만 똑같은 상황이었다. 주인은 못 본 척하며, 말없이 포메라니안과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영화나 시트콤의 한 장면 같았다. 자매가 처음엔 화를 내다가, 결국엔 눈물까지 흘렸고, 굴복했었다. 사건의 가해자를 실제로 본 나의 마음은 허탈했다. 사람의 마음이 외모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악의 평범성'이라는 어디선가 들었던 단어만 떠올랐다.


어떻게 이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을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운이 나빴다. 그리고 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었던 그 시기에 동생은 대학원 논문 준비를 앞두고 있었다. 낮엔 일하고, 밤엔 학교로 정신없던 시기, 결국은 시간을 돈으로 샀다. 즉, 말도 안 되는 합의금을 건네고 일상의 업무와 과제를 진행했다.


법이라는 신세계를 검색하게 되고, 감사한 분들의 조언을 듣고, 거기다 무심했던 일상을 꼼꼼하게 점검하게 만든 일이었다. 연결고리가 풀렸던 목줄을 버리고, 단단한 하네스로 바꿨다. 별 생각 없이 하던 산책을 전투에 임하는 자세로 주의 집중, 주변을 경계하듯 살피는 습관도 가지게 되었다.


한 달간 마음고생했던 2021년 봄. 벚꽃은 예뻤고, 나와 동생은 분노의 꽃을 피웠다. 별일 없는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했고, 기다렸다.


인생 프로그램 ‘알쓸신잡’ 영상을 즐겨 보아서였을까?


며칠 전부터 기분이 상하거나, 화가 나려고 할 때 내가 나에게 하는 주기도문이 생겼다.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


지금은 힘들고 화나지만 문득문득 즐거운 순간이 찾아온다. 주차한다고 30분을 뱅뱅 돌다가 우연히 귀여운 아기 고양이를 보았다. 장화 신은 고양이에 나올 법한 귀여운 아이를 보는 순간, 짜증 내던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다.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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