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정, ‘더 좋은 곳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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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면서 자기 주관으로 결단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후회 없는 결정은 실패해도 괜찮고 실제 경험치도 많을 때, 마음과 시간에 여유가 있을 때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옷을 골라본 경험이 거의 없는데 어떻게 자기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확실할 수 있을까. 일 년에 영화 한 편만 볼 수 있는데 어떻게 독립영화를 볼 수 있을까. ‘이번 아니면 끝’이라 생각하면 안전한 선택만 하게 되지만 , ‘아니면 말고’식으로 넘길 수 있다면 도전적인 결심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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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와 커리의 맛이 다르듯, 세상은 자세히 알고 나서는 절대 똑같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도 알아차릴 정도로 안목이 생길 때 나만의 특기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취향이란 그런 특기 있는 분야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아가면서 나다움에 더 가까워지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전문가란 더 많이 경험한 사람이고, 그 덕에 남들보다 더 많이 알게 된 사람이고, 남들이 못 보는 것을 짚어주는 사람이 아닌가.
한 발짝 더 깊이 음미해보지 않으면 섬세한 차이를 영원히 알 수 없고, 차이에 무감해지기 시작하면 인생이 단조로워진다. 우선순위를 정해 최소한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있어서만은 형편이 되는 한 적극 체험해보면 좋겠다.
막연한 짐작이 아닌 나의 실감으로 판단하는 경험이 쌓여갈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나라는 사람을 잘 다루는 법도 알아간다. 경험해보지도 않고,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고 단정하지 않기, 의견과 편견을 구분하기,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악한 짓만 아니라면 비난하지 않고 다만 궁금히 여기기. 이런 노력을 통해 제대로 좋아하고 분명히 싫어하고 싶다. 깊어지고 넓어지며 자주 감탄하기 위해서.
너무나 미안하고 또 미안한 20대, 30대의 나에게
아주 오래 나를 미워했다. 적응이 느리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20살 서울에 와서 느끼는 감정은 복잡한 도시에 혼자만 덩그러니 놓인 것만 같았다. 드라마 속의 캔디 같은 주인공처럼 나는 그렇게 활발하거나,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거기다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 멋진 왕자님과 같은 배경화면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롯이 나의 힘으로 이겨내야 하고, 풀어내야 할 과제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몰랐던 단어, ‘문화적 유산’
그때는 부족한 건 돈, 경제적 여유가 없다고 느꼈었다. 넉넉하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등록금과 적은 금액이지만 용돈도 받았고, 알바도 가끔 했지만 생활비는 부족했다. 졸업 후 회사를 다니면서 월급이 생겼다.
예전보다 경제력은 나아졌지만, ‘밑 빠진 독처럼’ 어딘가 비어있는, 채울 수 없는 공백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를 몰랐다. 어디에, 어떻게, 무엇을 질문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건 문화적 유산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돈을 벌거나 쓸 때에 어떻게 우선순위를 정할 것인지, 사람들 사이에서 ‘나’라는 유일무이한 존재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등등..... 이런 기본적인 생각과 해결의 실마리가 없었다.
경제적 자산, 돈이 없다는 건 사람을 작아지게 만든다. 돈이 없어서 사고 싶은 것을 못 사는 것보다 더 슬픈 건 생각도 돈의 액수만큼 작아진다는 것이다. 눈앞의 현실에 급급하고, 나에 대한 투자나, 큰 틀로 바라보거나, 아예 틀을 바꿔버릴 생각을 못하는 거다. 나의 틀을 가두고, 경험치를 넓혀갈 생각 조차 못하게 된다.
문화적 유산, 이건 돈을 벌어도 올라가지 않았다. 집안에서 알게 모르게 배웠던 삶의 자산들, 인간관계, 일, 건강 챙기기 등등의 것들을 무형의 것들을 이미 알고 있는 ‘금수저’들이 있다. 난 이마저도 ‘흑수저’에 가까웠다. 부모님과 그리 친하지도 않았고, 대화가 많지도 않았었다. 당연히 알거나, 살면서 배웠어야 하는 ‘사회화’ 과정의 일부를 셀프로 배우게 되었다. 어떤 것은 남들 하는 것을 보면서 눈치껏 배웠지만 그 밖의 것들은 책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배웠다. 그리고 나의 취향이 없어서, 남들의 취향이나 유행을 따라한 적도 있었다.
문제는 잘못 배웠다.
그때 주변 사람들은 지금 보니, 본인들이 문제가 더 많은 ‘가짜 어른’들이었다. 가짜의 말들은 해결은커녕 일을 키우거나, 신입의 희생만을 강조했다. ‘가짜 어른’, 꼰대들은 사회 경험이 쌓이고, 시간이 흐르고, 더 많이 고민하면서 보이기 시작했다. 날 위해서 해주는 척했던 조언들은 순전히 본인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헤매다가 결국 찾기 시작했다. 물려받지 못한 문화적 자산을 경험과 책으로 시작해서, 최근 몇 년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쌓아갈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것을 이것저것 해보면서 알게 되었다. 음악에 문외한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클래식을 좋아하고 과정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만의 다른 시선과 관련성 없어 보이던 다양한 관심사가 묶여서, 업무에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원천이 될 수 있었다.
20대 사회적 무지와 무경험을 ‘늦은 적응’과 ‘내향적 성격’ 탓으로 오인하고 늘 외향적인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신입일 때는 오랜 시간 외향적인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 하기도 했었다. 내향적인 사람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 같았고, ‘적응’이라는 이름으로 힘들어도 웃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에 맞추려다 어느새 나는 시들어갔다.
세상에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때는 이 둘을 구분하지 못했다. ‘말도 안 되게 둘 다 잘하려고 했던 것, 늘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했던 것’ 자체가 문제였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은 아무에게도 좋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는 가장 악한 사람이었다.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경험과 추억은 돈으로 산다~ㅎㅎ 부자는 아니지만 조금의 여유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것을 해봐야 한다. 시간이 될 때마다 궁금한 것, 재밌어 보이는 것, 관심 가는 것을 해보는 것, 어떤 것은 무료지만 어떤 것은 유료. 돈을 쓰고, 시간을 쓰면 나의 취향을 알게 된다. 그리고 문화적 자산도 쌓여 간다.
문화적 유산을 물려받지는 못했지만 ‘셀프 메이드’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기둥을 세워가는 것은 어떨지? 20살 때 내가 부러워했던 친구들은,,,,솔직히 말하면 그 친구들, 자체가 아닌 그 친구들의 배경이었다. 중산층의 그런 평온함과 여유에서 나온 태도와 이런저런 취향이 부러웠다. 그때는 엄마, 아빠의 경제력이 기본 베이스, 배경화면이었지만 지금은 나 스스로가 기본 배경이 되는 나이가 되었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지만 나이는 어떤 균형점을 찾아가게 하는 그런 마법이 있다. 없으면 만들어가는 그런 힘! 그리고 공평하지 않음을 마음으로 이해하는 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