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렌최, '할 말은 합니다'
(전자책 89%)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세계 안에서 타인을 이해한다. 즉 상대의 말을 들을 때 자신의 경험 또는 지식의 범위만큼 공감하고 받아들인다. 그 때문에 타인의 말을 들으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이야기로 바꿔 해석하기도 한다. 바로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공감, 이해를 위한 재해석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내 이야기'로 수렴할 수 있느니 말이다.
그 사람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걸까? 대놓고 티 낼 수도 없고. 사회생활은 해야 하니까 쉽지가 않네.
대답 1: "그러게. 나도 상사가 비슷하게 말한 적이 있었잖아.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지난번에는 말이야..."
대답 2: "그러게. 가뜩이나 일 때문에 바쁜데 그 사람까지 나대니 정말 쉽지가 없겠다. 부서를 옮기기는 어려운 상황이야?"
첫 번째 대답은 공감을 하려다 결국 자신의 이야기로 수렴한다. 반면 두 번째 대답은 상대에게 계속 관심을 갖고 이어서 질문을 했다. 첫 번째 대답에서는 상대의 말에 대꾸를 했더라도 결국 자기중심적으로 대화가 이어진다. 대개 이런 '자기 수렴'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자동으로, 습관으로 이어진다. 특히 편하고 친한 상대일수록 리액션 후 곧바로 내 이야기를 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져든다. 편하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나 중심적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기로 수렴하는 대답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진정성 있는 리액션을 위한 경청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로 이어 말하려는 유혹을 받으면 상대의 감정과 상황에 진심으로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 중략
이렇듯 나도 모르게 자꾸만 내 이야기로 수렴하게 된다면, 리액션을 할 때 의식적으로 주어에서 '나'를 빼는 연습을 해보자.
경청이 중요하다는 걸 모를 수 있을까?
다만 내가 하지 않았을 뿐이다. 오늘의 만남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과의 대화였다. 대화 순간순간 타인의 대화를 내 것으로 수렴하려는 나를 뿌리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나의 지나침을 내가 인지했을 때는 대화가 끝났거나 아니면 '아차'하는 순간까지 진입했을 때였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나'에게 침전되어 있었다. 자기 수렴의 늪에 빠졌다. 상대방의 대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나라는 세계 안에 빠져들었다.
말공부는 할 때마다 새롭고, 볼 때마다 신선하다. 나의 말공부에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늘 제자리에 멈춰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한 마디, 한 마디, 글의 구절구절이 평소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아서 마음 한구석이 따끔따끔 아려온다.
타인의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진정성 있게 리액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라는 세계, 테두리를 벗어나서 더 넓은 말 그릇을 가질 수 있을까? 어디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헤매는 초보에게는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세세하게 그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나처럼, 나같이, 나로 인해 생기는 '나'라는 세계를 잠시 내려놓기와 거리두기를 위해서!
나라는 우주와 타인이라는 우주가 만나서 대화를 한다. 두 개의 다른 세계가 하나의 세계로 좁혀진다는 것은 알고 보면 거대한 에너지가 움직이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우주를 떠돌다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주어에서 '나'를 덜어내는 날, 자연스러워지는 날, 경청의 세계가 열릴 것이라 믿으며.